67년의 회고 <국제> - 국제평화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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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베트남에서는 24시간의 성탄휴전이 실현됐다. 키프로스는 열전 촌전에서 그 긴장을 해소시켰고 이슬람과 시오니즘의 숙명적 대결도 일단 총화를 멈추고있다. 그리나 이 지역에서의 평화는 여전히 적신호를 켠 채 있다. 아무도 지금의 소강을 평화의 청신호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원래가 영토나 종교분쟁에서는 이성이나 논리성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때문이라고도 할 것이다. 한편 베트남에서의 적침은 공산주의자들이 승리의 환상을 버릴 그날까지 군사적 충돌이 거의 불가피하겠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세계의 힘의 두개의 근간이 되어있는 미·소는 비록 핵확산금지조약 체결의 마지막단계에서 승강이를 벌이고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때 베트남전쟁으로 동결되었던 공존의 무드를 착실히 회복시키고있는 중에 있다. 1월의 「우주공간의 평화이용에 관한 조약」체결에 이은 3월의 영사조약비준, 6월의 글라스버러 회담 등 괄목할만한 평화에의 이정표가 축조되었다.
「공존시대」의 의미가 굵직하게 되새겨지면서도 긴장과 분쟁으로 지새웠던 한해, 그것이 67년의 세계였다.

<평화의 난관>
베트남전쟁, 중동분규, 키프로스의 긴장, 2년째 계속되는 홍위병 난동, 파운드 평가절하로 노출된 국제통화위기 및 EEC(구공시)의 보조불일치, 그리고 격화되는 인종분쟁, 67년을 수놓는 많은 긴장의 촛점들, 그런 숨가쁨 속에서 정미년은 갔다.
우선 베트남전쟁을 보자. 연합국은 올해 한햇동안 소기한 평정작전을 성공적으로 전개시켰으며 북폭을 비롯한 제군사적 노력도 크게 진전됐다. 주월미군병력은 50만에 육박하게 되었으며 아시아·태평양 연합국들의 대 베트남전 지원도 현저하게 강화됐다.
그러나 미군은 록닌, 닥토에서 값비싼 희생을 치러야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이, 특히 존슨행정부가 치러야했던 값진 대가가운데는 정치적인 것이 더 컸다. 존슨행정부는 내년 말로 다가선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압력과 인종분규로 인한 국내적 압력의 협공을 받아야 했다. 그런 정치적인 틈을 군사적으로 열세에 놓이게된 공산주의자들은 교묘하게 파고들기도 했다.
다음, 6월의 세계를 아연 긴장시켰던 중동전쟁은 선제공격의 기회를 빼앗긴 아랍측의 처참한 패배로 엿새만에 그 총화를 멈추는바가 되었으나 이미 48년과 56년의 두 차례에 걸쳐 격돌한 기록을 갖는 이슬람과 시오니즘의 대결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혹은 종교적으로나 재충돌의 위험을 가시게 하고있는 것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생존권과 통일아랍공화국의 영토권이 마찰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나 그 심층에 깔려있는 역사적, 종교적 대결의 인소는 어느 하나도 제거된 것이 없다. 이 양자간의 숙명적 대결은 그대로 긴장의 씨앗을 안은 채 68년을 향해서도 달음박질해 갈 것이다.
그러면 그 숱한 평화에의 난관은 누가 제거할 것인가. 한때, 다시 말하면 50년대 후반, 동서가 첨예하게 냉전질서로 대치하고 있을 땐 그 냉전의 조건을 완화하고 공존의 기초를 다지려는 이른바 A·A제3블럭의 입김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판이하다. 세계공산주의도 이미 일사불란한 통제의 힘을 잃었고 지역적 민족적 대결은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원래가 비논리 위에 서는 것이다. 평화의 촉매자에 메마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를 체념할 수는 없다. 미·소는 현대를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살아온 세기적 책임을 그들 스스로가 다하여야 할 것이고 유엔도 월등히 그 평화기능을 강화·발휘하여야 한다. 하지만 평화의 책임가운데서도 가장 강조되어야 할 것은 너무도 많은 긴장과 분쟁의 한해를 보낸 세계 제국민의 마음속에서의 평화의욕의 고취요 평화책임의 강조라 할 것이다. 바오로6세도 이점을 지적하였다.

<한국의 좌표>
그러면 「공존시대」의 의미가 그 저변에서 다져지는 한편에 끊일 사이 없는 분규로 한해를 보낸 세계 속에서의 한국의 좌표는 어떠한 것인가.
한국은 지난해부티 일기 시작한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물결을 앞장서서 선도해왔다. 이제 아시아·태평양제국은 세계의 위험의 주요원천이 되어있는 중공의 팽창이 아시아의 기존균형과 안전에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함께 깨닫게 되었고 공동의 결속의 필요도 절감하게 되었다. 미국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한국이 투입시키고 있는 베트남전쟁도 군사적으로는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룩했다. 그리하여 아시아 속에서의 한국의 위신은 상대적으로 고양되었다. 아시아 속의 한국좌표는 마침내 굳건하게 정착하였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선창국, 한국에는 아직도 미해결의 과제가 산적돼있다. 그렇듯 고양된 위신이나 지위에 알맞는 한·미 관계, 한·월 관계, 한·일 관계가 설정되어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성장단계에 있는 한국경제가 그 관계들에서 더 많은 개선점을 구하고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한편 유엔에서의 한국문제토의는 비록 예년에 비해 격심한 변동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한국문제에 대한 세계의 관심, 경향은 이제 고착될 대로 고착됐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난10월에 우리외교가 겪어야했던 알제이에서의 수모는 세계 속에서의 한국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데 있어서 중요하고 뼈아픈 교훈의 일단이 되었다. 캔버라에서의 회동도 중요하려니와 아시아 속에서의 좌표의 정착도 중요하다. 그러나 68년에는 성년이 될 한국외교는 그 행동반경을 이제는 세계 속에서도 넓혀가야 할 것이며 새로운 열강시대의 세계의 변화의 입김에 기민한 체질도 함께 갖추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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