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주교들 결정 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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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현지시간) 베드로 바실리카 성당 앞의 가판대 앞에서 판매용으로 전시 중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엽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천주교회를 괴롭혀 온 미국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교황은 바티칸 교황청에 모인 미국 천주교 고위 성직자들에게 교회가 더욱 믿음에 뿌리내림으로써 현재의 위기 상황을 벗어날 것을 호소했다.

이같은 교황의 발언은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 처리에 관한 기본 원칙을 마련하기 위해 로마에서 열리고 있는 공식 회담 첫날에 나온 것이다.

교황은 "주교들이 문제의 본질과 의학 전문가들의 조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드러난 것이 사실이다. 신부들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욱 신뢰할 만한 기준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위기를 초래한 성추행은 전적으로 잘못됐으며 사회적으로 볼 때 분명히 범죄에 해당하며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경악할 만한 죄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또 "가톨릭 신자들은 이번 시험이 가톨릭계를 정화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교회가 자유게하는 힘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정화작용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교황청 내에 있는 교황 집무실 겸 공관인 사도궁(Apostolic Palace)에서 개최되고 있다. 미국 주요 대주교관구를 대표하는 대주교 8명을 포함한 13명의 미국 추기경들 중 12명과 미 카톨릭주교협회의 고위 관리 2명이 교황청에 모였다.

이틀 간에 걸쳐 실시된 이번 회담으로 6월 댈러스 미 주교 전체 회의에서 밝힐 것으로 보이는 신부 아동성추행 혐의 처리 정책의 기본 골격이 정해진다.

미 카톨릭 주교협회의 의장인 윌튼 그레고리 주교는 화요일 교황과의 조찬 모임이 '매우 진실했다'고 표현했다.

토론 게시판
그는 "분명히 주교들의 신뢰성 문제가 회담의 실제적인 논제가 되고 있다. 잘못된 판단을 내려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주교들이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신부 성추행 사건을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는 대책과 현재 비난을 받고 있는 과거의 판단 실수와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그레고리 신부는 이번 문제의 책임 일부를 동성애 신부들과 신학교 내의 공공연한 동성애자 확산 탓으로 돌렸다.

그는 "지금 투쟁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은 가톨릭 사제단이 동성애자들에 의해 지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투쟁이란 점이다. 신부들 사이에 동성애자들이 번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학생으로 받아들이는 신부 후보자들이 정신적·정서적·신앙적으로 건강하도록 하기 위한 투쟁인 셈"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카고 대주교인 프란시스 조지 추기경은 신부들 간의 동성애 문제를 다른 각도로 설명했다.

그는 "신부 양성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신부 후보자가 결혼과 가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묻는 것이다.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는 기혼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헌신된 사람 즉, 예수그리스도의 배우자다. 신부 양성에서 어려운 점은 신부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듯 자신이 기혼자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부의 독신 문제와 관련해 이번 논의는 신부가 독신자로 남도록 하는 의무 규정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다고 밝혔다. 그는 10년 전 11살 짜리 소년을 성추행한 죄로 지난 1월에 유죄판결을 받고 성직을 박탈당한 신부인 요한 조그한 같은 부도덕한 사람과, 술을 마신 상태에서 17세 소녀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사람 간에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 두가지 모두 범죄에 해당하지만 조그한 신부의 경우는 의심의 여지 없이 더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한다.

조지 신부는 보스톤 대주교 베르나르드 로 추기경에 대한 사임 요구는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로 추기경은 아동 성도착증이 있는 신부들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으며 사임 압력에 시달려 왔다.

조지는 "어젯밤 1차 회담에서 로 추기경이 '만일 자신이 그런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점에 대해 사과를 표명했지만 자신이 사임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에게 사임 가능성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주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과 이번 위기와 그의 사임 문제를 논의하고 돌아온 로 추기경은 자신이 1984년부터 이끌어온 보스톤 대주교 관구의 수장으로 남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로 추기경은 이번 주 회의 참서을 위해 교황청으로 떠나기 전인 일요일, 보스톤의 홀리 크로스(Holy Cross)성당 신도들 앞에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은 시계바늘을 되돌려서 자신과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성학대 추문 관련 결정들로 인해 발생한 피해와 상처를 없앨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나를 포함한 신부들은 과거 정책의 부적절함, 위기의 심각성, 신뢰감 회복에 필요한 변화 조치들을 빨리 인식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의 사임을 요구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한 나의 지도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VATICAN CITY (CNN) / 김내은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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