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레저] 몰디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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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갈로 뒷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섰다. 나무 발코니 밑으로 잔잔한 바다가 보인다. 옆 방갈로에 묵고 있는 독일인 신혼부부는 준비해온 에어매트를 꺼내더니 발코니 계단을 내려와 물에 몸을 맡겼다. 신부가 올라탄 에어매트 주변에서 장난질을 하는 신랑의 배꼽이 보인다. 저 멀리서 파도가 흰색 포말로 부서진다. 족히 3㎞는 될 만한 거리다. 파도가 부서지는 선을 경계로 안과 밖의 색깔은 싱그러운 연록과 짙은 프러시안 블루로 확연히 구분된다. 경계선은 산호초 띠다. 인도양에서 직접 몰아오는 거센 파도는 일단 저 산호초 벽에 부딪쳐 에너지를 대부분 상실한다. 날씨 사나운 날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처럼 산호초 부근에선 큰 포말이 쉴 새 없이 터지지만 안쪽 산호해안은 그냥 찰랑거릴 뿐이다. 거대한 수영장 같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서 출발해 기세 좋게 밀려온 쓰나미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지도상에서 사라졌다'는 성급한 외신의 보도와 달리 몰디브가 신혼부부의 천국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선아일랜드 리조트 방갈로에 누워만 있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몰디브는 특이한 나라다. 인도 남서쪽 바다에 1190여 작은 섬이 닥지닥지 놓여 있다. 이 중 4㎞의 활주로를 간신히 만든 훌룰레 섬이 가장 클 정도로 작은 섬들이다. 섬 수십 개가 모여 아톨(Atoll)이라는 산호초 군도를 형성한다. 모두 26개의 아톨로 구성된 이 나라의 면적은 남북 820㎞, 동서 120㎞로 한반도의 절반 정도. 섬들의 평균 고도는 해발 2m. 산호가 없었더라면 정말 사라졌을 나라다.

몰디브엔 87개의 리조트가 있다. 섬이 작은 만큼 섬 하나에 리조트 하나씩이다. 섬 안에 파묻힌 사람은 그대로 자연이 된다. 시내관광이라는 전형적인 코스도 없고 쇼핑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쉬다가 몸이 근질거리면 코 앞의 바다로 '풍덩' 빠지면 그만이다. 어느 바다에든 산호초가 널려 있고 그 주변엔 화려한 열대어들이 수도 없이 노닐고 있다. 스노클링 포인트가 따로 없는 셈. 제트스키.패러세일링.카약.요트 등 해양 레포츠는 원하는 만큼 실컷 즐길 수 있다. 산호초 경계선을 넘어 멀리까지 나가는 선셋 피싱도 권할 만하다. 낚싯대 없이 바늘에 미끼를 꿴 낚싯줄만 던지는데도 팔뚝 만한 고기가 쉴 새 없이 걸려든다. 그러고는 다시 휴식.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내려앉은 북두칠성과 촘촘한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는데 수평선 부근에선 번개가 번쩍이는 오묘한 하늘의 조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관광객들은 쉽게 자연의 포로가 된다.

한 나라에 속해 있지만 리조트 섬들은 모두 독립국가나 다름없다. 그래서 87개의 리조트 중 13곳이 약간의 피해를 보았어도 나머지 리조트는 피해를 느끼지도 못했을 정도. 수도 말레에서 113㎞ 떨어진 선아일랜드 리조트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직원 김명주씨는 "해수면이 높아진 것을 빼면 특별한 징후가 없어 다음날 아침 뉴스를 보고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이 비교적 일찍 알려진 유럽에서는 예년과 다름없이 몰디브를 찾는다는 것이 모하메드 사에프 관광청 차관의 설명이다. 하지만 아시아 손님은 대폭 줄었고 한국 손님은 제로 수준이다. 도대체 왜 안 오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묻어났다.

말레=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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