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체벌엔 펄쩍 … 학원엔 관대한 법과 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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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학생 류모(13)군은 앞니로 딱딱한 사과를 한번에 베어먹지 못한다. 지난해 5월 영어 수업을 들으러 다니던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W학원에서 얼굴을 맞아 치아 뿌리가 부러지고서부터다. 가해자는 보조 직원인 지모(24)씨였다. 지씨는 정규 수업이 끝난 후 생활지도 시간에 단어를 외우지 않고 떠드는 류군을 교탁으로 불러냈다. 류군이 말을 듣지 않자 화가 난 지씨는 자기 키 만한 대걸레 자루를 들었다. 팔을 세 번 때리고 얼굴을 내리쳤다. 입에서 피가 나는 류군에게 지씨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라’며 동전을 쥐어줬다. 류군은 피범벅이 돼 집에 돌아왔고 병원에서 ‘치근 파열’ 진단을 받았다. 부모가 항의했지만 지씨는 “주의를 줬는데도 떠들어 교육 차원에서 매를 들었는데 아이가 피하다 잘못 맞았다”고 주장했다. 학원 원장은 “보험사가 보상해줄 테니 기다리라”거나 “당사자인 지씨와 해결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류군 아버지는 석 달 뒤 지씨를 형사고발했다. 그러나 학원 측은 지씨가 올 1월 개인 사정으로 학원을 그만둘 때까지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서울 동부지법은 지난달 23일 상해치상 혐의로 지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학원 체벌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지난해 6월 박모(14)군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영어학원에서 맞아 엉덩이가 터졌다. 태도가 불손하다는 이유였다. 그해 9월 경기도 수원 소재 고입학원을 다닌 이모(16)양은 숙제를 안 해갔다가 심하게 맞아 손가락뼈가 골절됐다. 이양은 “무차별적으로 때려놓고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한 사랑의 매라고 하더라”고 털어놨다. 2010년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같은 이유로 장모(16)군을 효자손 날로 때려 전치 6주 상해를 입힌 경기도 평택의 K학원 수학강사 김모(35)씨에 대해 징역 6월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원 체벌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현행 학원법은 학원 운영자가 보험이나 공제사업에 가입해 수강생에게 필요한 안전 조치를 하라는 규정만 두고 있다. 체벌을 따로 규제하는 규정은 없다. 민원이 있을 때만 현장을 단속하고 사후 벌점을 부과한다. 누적 벌점에 따라 등록 말소, 교습 정지, 시정명령 등 행정처분을 내리고 있다. 한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학원과 피해 학생 간 합의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고 학원이 가입한 배상책임보험에 따라 적은 보상금이라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이는 학교에서의 체벌이 불법인 것과 차이가 난다. 2011년 3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학교에선 도구나 신체 등으로 학생을 체벌할 수 없다.

 학원 폭력은 관리와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황순욱 서울시교육청 학원정책팀 주무관은 “학교 체벌은 안 된다는 부모들이 학원 체벌은 용납하기도 하는 괴리감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사춘기 남학생을 둔 일부 학부모는 일부러 ‘체벌 학원’을 찾기도 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동을 다루는 만큼 학원법 개정을 통해 학원도 교육기관의 범주에 넣고 초중등교육에 준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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