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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한국, 오늘과 내일의 사이-우리의 미래상을 탐구하는 67년의 「캠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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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중음악은 딴 기회로 밀고, 여기서는 음악을 주로 순수음악 또는 예술음악으로 국한하고 양악과 국악으로 나누어 말하려고 한다.

<양악>
1904년 처음으로 창가를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선택하였고, 1910년에 소위 학부창가 집이란 초등학교용 창가교과고가 발간되어 양악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 60여년이 된다. 그러나 서양의 예술음악이 현저하게 발전한 것은 l945년에 속하고 해방과 함께 합창단·교향악단·「오페라」단·음악대학 등이 일어났다. 1950년 6·25동란으로 음악은 한동안 고개를 숙였다가 휴전이후 다시 고개를 들었다. 따라서 서양예술음악의 발전은 20년 미만이란 짧은 역사를 가졌다고 하겠다.
「음악적 풍토」의 개선-연주부문
연주부문에서 우선 교향 관현악단은 다수의 음악인과 다액의 경비를 요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서울에는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2대 교향악단이 있고, 지방에도 부산·대구·인천 등에 교향악단이 존재하고 있다.
교향악단이 왕왕 음악기술이 뛰어난 꼬마음악가를 공연에 탁용하는 적이 있는데 그런 공연은 아동과 그의 부모를 권장하는데 의의가 있다 하겠지만, 음악상이 원숙한 성인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음악발전의 정상적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제는 지금 형편으로 그런 성인이 출연을 응낙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향악단이, 예를 들면 6개월 앞의 「레퍼토리」에 대하여 계획을 세우고 출연자에게 충분한 연습시간을 주어 출연을 응낙할 수 있게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계획이 음악수준을 높이는 것에 많은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이같이 교향악단의 공연이 부유한 가정의 꼬마음악가를 등장시키고, 성인음악가의 연주협력을 얻기 어려운 것은 교향악단의 소요경비가 부족한 탓일지도 모른다. 근소한 예산을 보충하기 위하여 경비도 염출하여야 하고, 사소한 사례로 출연자를 구하기 어려울 고층이 있을지도 모른다.
교향악단이 일국의 음악문화에 절대 필요하고, 또 현상대로 답보해서는 안될 것이 자명할진댄,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마땅할 줄 안다. 음악인의 예술의욕이 감퇴하지 않을 정도로 재정적 뒷받침을 해줄 것이 절실히 요망된다.
독주·독창의 경우, 큰 포부를 갖고 해외에 나가서 음악을 연수한 사람이 귀국연주회를 한번 갖고 나서는 다시 연주활동을 계속 못하는 편이 더 많다. 그의 연주기술이 저조하기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 음악대학에서 실기를 가르치고, 집에서 개인교사를 하는데 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음악발전에 장애가 된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한동일, 김영욱, 정명화, 정경화 등 20∼30대의 젊은 음악인이 금의환향하면, 그 선배의 전직을 밟지 않고 연주활동을 활발히 계속할 수 있을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런 연주실력을 가진 음악인이 개인교수로 집에 갇혀있지 않고, 연주회장에 나가서 그들의 천분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음악적 풍토가 개선될는지 의문이다.
우수한 음악가를 양성하려면, 음악교육문제에 당면한다. 훌륭한 연주가로 만들려면, 어릴 때부터 개인교수를 받아 연주「테크닉」을 습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고 「바이올린」이나 「첼로」등을 전공으로 하는 어린이들은 전공악기이외에 「피아노」를 부전공으로 배워서 화성을 가진 서양음악에 귀를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 어린이가 장성하여 음악대학에 진학하면 또 다음 같은 문제에 봉착한다. 대학은 직업음악예술가에게도 교양이 필요하다하여 교양과목을 필수로 과한다. 교양과목의 학습, 특히 시험은 실기의 연습시간을 단축시킨다.
대학에서 실기를 위주로 하려면, 미국 「줄리아드」음악대학, 「이스트맨」음악대학 등처럼, 대학에 지금 한국의 음악대학제도와 같은 과(학사학위를 주는 과)와 음악실기만 배우고 음악가의 「디플로마」를 하는 「디플로마」과가 구분되어 있어서 후자의 과를 택하면 좋을 것이다. 음악실기 치중을 위하여 음악대학을 이같이 두 과로 분리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의연히 밑바닥에 남는다.
한국의 실정으로는 연주활동만으로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그런 문제다. 이런 근본문제를 치우지 않으면 「디플로마」과를 신설하더라도 그 과의 지망자가 있을는지 매우 의문이다.
연주자가 되려는 의욕이 강한 사람은 대학을 졸업한 후 외국유학을 희망한다. 이 외국유학에도 문제가 있다. 즉 한국인 한사람이 외국에 나가서 음악을 배우는 것보다 외국인의 교사를 한국에 초빙하는 편이 더 많은 학생에게 배울 기회를 준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외국인 교사 초빙도 각 음악대학의 현 재정상태로써는 그 경비부담 액이 많기 때문에 실현되기 곤란한 형편이다. 지금 형편으로는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를 계속하는 도리밖에 없다.
이 같이 음악연주가가 되기 위하여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우고, 대학을 마친 후 외국유학을 하였지만,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한 음악인이 모국에 돌아와서 숙제의 연주생활을 못한다면 적어도 연주활동에 관하여서는 커다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앞날의 한국의 음악 연주계의 발전을 위하여서는 음악가의 실력에 못지 않게 음악회 운영 또는 청중동원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기법 치중, 의욕 상실-작곡부문
해방이후 음악대학이 생겼고, 각 음악대학은 거의 다 작곡과를 두었다. 그러나 작곡을 전공한 사람의 활동은 연주실기를 전공한 사람의 활동보다 뒤떨어진 느낌을 준다.
물론 작품발표회는 연주회보다 더 많은 경비를 요하여 용역하지 않지만, 그보다도 작곡은 과거의 명작의 모방보다 독창성을 요구하기 때문이겠다.
후기 낭만파의 음악이 금일에도 연주가에 의하여 연주되지만, 그러나 작곡가에 의하여 모방되지는 않는다.
작곡에 뜻을 둔 사람이 독창적인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과거의 작곡기법의 기초훈련도 없이 신 기법을 추구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또 한편 과거의 작곡기법의 습득에 지중하고 창작의욕을 상실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또 한편 기성작곡가로 말하면, 성인음악가의 연주활동이 침체한 것 같이, 기성작곡가의 창작활동도 침체하고 있다. 이같은 예술창작의 침체성은 민족문화창조에 큰 암영을 던진다. 오늘날 기성작곡가의 대부분은 음악대학에서 교편 생활을 하고 있고, 창작에 손을 대는 적이 극히 드물다. 창작자동을 활발케 하려면 역시 외국의 선례도 있듯이 작곡가에 작곡을 위촉하여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여 주고 응분의 보수를 주어 작품에 정력을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금도 더러 공보부나 방송국이 1년에 한번쯤 작곡가에 작곡을 위촉하지만 그것으로는 작곡계의, 침체성을 깨뜨리기에는 불충분하다. 앞으로는 그런 작곡위촉이나마 전년도에 계획되고, 작곡가에게 넉넉한 작곡시일의 여유를 주는 것이 요망된다.
그런 계획성이 있음으로 인해서 연례 행사화할 수 있고, 작곡시일의 여유를 넉넉히 줌으로 인해서 비교적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미리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작곡위촉의 경우뿐만 아니라, 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연주회 준비의 경우에도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계획성으로 인해서 같은 경비를 들이고도 구상과 연습의 여유를 더 많이 주고 그에 따라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보부에서 1년에 한번쯤 작곡가에 작곡을 위촉하고서는 작곡계의 침체성을 타파할 수 없다. 민족문화의 창조를 문화정책으로 채택한 정부는 정부의 중요행사 때 외국음악을 차용하는 대신 우리 작곡가에 위축 작곡케 한 음악을 연주하기 바란다.
정부가 미술전람회를 개최하고 그 출품작품 중 우수한 것에 상을 주고 그것을 사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정부의 중요 기념행사나 예술원상시상식에 우리 작품을 연주하는 것을 방침으로 세우고 그것을 작곡가에 위촉하는 것은 전연 실현 불가능한 공상 같지 않다. 앞으로 창작활동을 활발화 하는데 유효한 작곡위촉은 그것이 실현되도록 추진되어야 하겠다.
음악회가 생활화돼야-청중문제
위에서 연주활동과 작곡활동이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더 발전 못하고 정지되는 것을 보았다.
즉 성인연주가의 연주활동이 활발치 못하고 기성작곡가의 창작활동이 침체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주로 연주가와 작곡가가 다같이 자기의 전공기술을 전업으로 삼으면 생활의 보장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의 음악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연주가와 작곡가가 연주활동과 창작활동을 전업으로 삼을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음악연주회가 성황을 이루어 음악인이 모든 정력을 연주회에 경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청중이 이 문제와 관계를 갖게 된다. 오늘날의 청중은 방송과 「레코드」로 세계 일류의 음악연주를 들을 기회를 많이 갖고있다. 외국인의 음악 연주회 때는 3천석이 다 청중으로 찬다. 그와 반대로 국내음악인의 연주회 때는 그 자리가 다 차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것으로 보면 음악회가 성황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는 청중의 음악감상수준이 높으냐 낮으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늘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음악회장뿐만 아니라, TV나 「레코드」에서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음악회에서 얻는 음악에 대한 인상과 방송이나 「레코드」를 듣고 얻는 인상은 다르다. 그러나 그것을 동일시하는 청중도 아직 많다. 여기서 말하려는 취지는 앞으로 음악회가 성황을 이루려면, 음악회에서 듣는 것이 TV나「레코드」로 들을 때와 다른 점을 더욱 명확하게 부각시켜야 하겠다는 점이다.
자고로 예술은 「패트런」에 의하여 육성되었다. 「하이든」과 그의「페트런」「에스테르하치」공의 관계는 특히 현저한 예다. 오늘날 음악연주회의 「패트런」은 누구냐? 젊은 음악학도보다 오히려 부유한 중년이상의 신사숙녀일 것이다.
마음으로는 학술회·경제회·정치회·친목회 같은 제집회의 회의를 마치고 저녁에 음악회로 몰려오는 단체다. 외국의 예를 들면 어느 한 회사가 연극 같은 것을 하룻밤 사서 회의에 출석한 사람을 그 극장으로 초대하는데 우리 음악회에도 그런「패트런」을 끌어들여야겠다. 또 정부가 미지의 성과에 보조금을 내주는 위험을 하는 것보다는 예술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음악회의 입장권을 몇 분의 1이라도 사주면 그도 또한 유력한 「패트런」이다.
이런 「패트런」을 맞으려면, 연주회의 형식도 그에 맞게 고쳐져야 할 것이다. 친목회원 같은 「패트런」뿐만 아니라 기타「패트런」들도 「로비」에서 차를 마시면서 환담을 나누고 사교할 여유를 주게 휴식시간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음악회가 성황을 이루려면 음악학교 음악학도의 실습장도 되겠지만, 화려한 사교장이 되어야 한다. 음악회가 성황을 이루려면 음악도 즐기고 사교도 할 수 있는, 즉 생활과 밀접한 관계서 가져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요약하면 한국의 음악예술이 더욱 발전을 하려면, 연주가와 작곡가가 연주와 작곡을 전업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고, 그렇게 하려면 연주회가 성황을 이루어야겠고 성황을 이루려면 음악인의 실력도 관계되지만, 그보다도 음악회가 생활화되어 청중이 즐겨 가는 곳이 되어야겠다.

<국악>
우리 나라에 양악이 수입된 이래, 국악은 그에 눌려 부진한 상태에 있다. 특히 청소년층에서 그렇다. 양악의 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은 국악의 예술가치를 양악으로 율한다. 일례를 들면, 양악의 음정이 올바른 것이고, 그와 다른 국악의 음정은 틀린 것이라고 단정한다. 또 젊은이들은 대개 국악은 「템포」가 느려서 현대인의 감각에 맞지 않는다고 그것을 소외한다.
그러나 「팔레스트리나」의 고전 음악이 현대 서양인의 감각에 안 맞는다고 해서 그 예술가치가 떨어지지는 안 했다. 앞으로 국악이 양악과 다른 점, 국악특유의 예술성을 젊은이에게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최근에 와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음악교과서에 국악에 관한 교재를 실은 것도 그 필요성을 느낀 까닭이라 하겠다.
초등학교 아동에게 국악을 가르칠 때, 양악의 음정과 다른 국악 재래의 음정을 쓸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국악의 음정을 버리고 평균율을 취하면 국악의 성격이 매우 달라질 것이고, 국악의 음정을 준수하면 양악의 음정을 교육받은 아동의 부담이 과중할 것이어서 어려운 문제다.
또 한편 새로 국악을 작곡할 때, 화성을 쓰려면 평균율을 취하여야 한다는 논이 있다. 이 문제는 결국 화성을 취하느냐 재래 음정을 취하느냐의 결정에 달렸다 하겠다. 이와 같은 문제는 1964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동서양 음악회의에서도 논의되었었다. 즉 독일 「슈투켄슈미트」씨는 인도 음악에 「폴리포니」를 도입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암시하였고, 이에 대하여「오스트리아」의 「다니엘·루」씨는 화성의 전입으로 인도음악의 절묘한 음정이 파괴된다고 반대하였다. 요는 예술창작에 고정된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고 창작자의 소신에 따라 쓴 작품에 의하여 결정될 것으로 생각한다.

<고유의 예술성 살려「신 국악」 창작을>
다음에는 금일엔 과거와 달라 국악이 넓은 연주회장에서 연주되는 데서 파생되는 문제가 있다. 즉 악기 특히 현악기의 음량이 작아서 「스피커」의 힘을 입고 있는데 앞으로는「스피커」없이 악기 자체의 음량을 어떻게 증대하느냐는 문제다. 이 문제는 그간 국악기 개량의 연구와 시험이 있어 미구에 해결되리라고 믿는다. 다음에는 연주회장에서 한시간 이상 연주되려면 국악이 풍부한 변화를 가진 「레퍼토리」를 마련해야겠고, 그러자면 자연 신 국악 작곡의 필요성이 생긴다. 이 필요성을 느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는 그간 수편의 신 국악 작품을 시험해보았고 국립국악원도 신 작곡의 「콩쿠르」를 실시하여 신 국악 창작을 권장하여 왔다.
지금까지 여러 작곡가가 각자의 의도로 신작을 시험하여 왔고 그런 신작 중에는 비교적 성공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앞으로 국악의 창작은 더 활발하여야하고 그 중에서 「스탠드·레퍼토리」가 출현돼야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 나라 특유의 전통음악은 살려야 하고 그 고유의 예술성은 교육되어야 하며 또 한편 신국악도 창작되어야 하겠다. 이런 양면활동의 병행으로 인하여 국악의 침체성이 깨뜨려지고 국악의 지식이 보급될 것이다.

<음악문제 심포지엄>
1967년 10월 3일 본사 회의실<무순>
사회 김성태(서울대 음대학장·작곡)
이혜구(서울대 음대교수·음악학)
김순애(이대교수·작곡)
이상춘(서울대 음대교수·성악)
정희석(연세대교수·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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