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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발한 김정은…20만명 생계 끊나 후퇴하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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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라는 강공 카드를 빼들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 측을 압박하기 위해 먼저 근로자 철수를 강행한 김정은의 ‘강수’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개성공단 북측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중앙특구개발총국은 27일 대변인 발표를 통해 “우리는 6·15의 옥동자로 태어난 개성공단을 소중히 여기지만 덕도 모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줄 생각이 없다”며 우리 측에 책임을 전가했다. 하지만 “공업지구에 먹을 것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라거나 “(남측이) 중대 조치니 뭐니 하며 오만무례하게 대화 제의를 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지적하는 등 당황한 흔적도 엿보였다.

 김정은의 첫 번째 딜레마는 공단 폐쇄를 북측이 먼저 ‘도발’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 9일 북측 근로자 5만3000명을 일방적으로 철수시켰다. 대남 압박 조치였지만 결과적으로 개성공단 폐쇄의 가속페달을 밟은 셈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이 느닷없이 파기되면 누가 투자하겠느냐”며 북한의 조치가 국제사회의 약속 위반이란 점을 선제적으로 부각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북한이 초반 기세를 잡기 위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통행제한과 근로자 철수를 진행하며 개성공단 문제 대화 여지를 없애버렸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딜레마는 개성 근로자와 주민의 불만 고조다. 북한은 당초 개성공단 카드로 남한 압박과 함께 내부적 결속을 노렸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라는 파국으로 치달으며 오히려 내부 불만을 부추기게 됐다. 탈북자 등 대북 단체에선 “‘공단이 장난감도 아닌데 개성 사람들만 먹고살기 힘들게 됐다’는 불만이 개성 시민들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세 번째 딜레마는 개성공단 책임 소재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유훈(遺訓)사업인 개성공단을 협상카드로 삼은 데 대한 책임 논란이 나올 수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개성공단에 대해 불만을 가져온 군부 강경파와 통일전선부로 대표되는 온건파 간의 내부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개성공단으로 인한 내부갈등이 북한 불안요소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북한 입장에선 박근혜 대통령과의 첫 기싸움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것도 뼈아프다. 유 교수는 “개성공단 압박→남북대화 재개라는 출구전략 시나리오를 염두에 뒀던 북한이 박 대통령과의 기싸움에서 완전히 밀린 셈”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북한도 중국의 특사나 북·미관계 개선 상황에 따라 개성공단을 되살릴 명분을 기다릴 것”(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이라며 김정은의 고심이 커지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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