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집」이라든지 「우물」이라든지 낯익은 탑이라든지, 더 가까이는 그들의 의복, 외투까지도 오늘날보다 훨씬 값어치있는 귀중하고 친밀한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있어서 모든 것들은 그 내부에서 인간적인 것을 발견해 내거나 그것을 간직하는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미국에서 알맹이 없는 살풍경한 풍물들이 쇄도하고 있읍니다. 그것들은 다만 허실한 생활의 완구에 지나지않읍니다. 미국식 사고방식에 의한 주택, 미국과실에는 우리네 조상이 그들의 희망과 마음씨를 그 내부에 은밀히 간수하고 있던「집」이나 과물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습니다.
우리들로부터 생명이 불어넣어지고, 우리들에 의해 체험되고. 우리들과 고락을 함께 하는 「것」들은 바야흐로 점차 소멸하고 있을 뿐, 이를 보존할 방도가 없습니다. 아마도 우리들은 이런「것」등을 알고 있는 마지막 사람들일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릴케」가 남겨놓은 서한 한귀절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잃어가는 듯한 현대의 공소함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그 감동은 깊은 향수와 비애마저 자아낸다. 추석을 맞은 도회의 풍경은 얼마나 어설픈가.
아이들은 품위 없이 만들어진 상인들의 의복을 입고 즐기며, 시장의 한구석에는 낯선 외래품들이 공연히 성시를 이룬다. 묘지로 향하는 자동차들의 행렬, 먼지투성이의 길, 소란한 산정, 계곡 속된 예절과 형식, 그리고 점점 모든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가는 조상의 위엄과 깊은 흠모와... 시골이라고 명절의 즐거움이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도회인의 사치심에서 제외된 조악품들로나 이날의 기쁨을 맞는다.
가령 차례나. 민속이나. 온고는 단순히 복고이기 때문에 경멸되어야 하는가. 명절일수록 우리는 또다시 고향을 찾고싶은 향수에 무겁게 잠긴다. 그것이 현대인의 허무감이고, 오늘의 생활양식이 갖는 공허함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