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로의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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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늘도 아침상을 물리고 바지개에 낫을 갈아 얹고 아내와 대문을 나섰다.
집앞 큰 한길에는 자전거의 종소리와 함께 산골 아낙네들이 쌀이랑 콩이랑 혹은 몇 줄의 달걀꾸러미를 이고서 몰려든다.
오늘이 또 장날이구나. 우리 집은 장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도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잊어버리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대로의 밭일을 한참 하는데 아내는 어느새 지나가는 장꾼들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나도 함께 눈길이 멈췄다. 몇 명의 젊은 아낙네들은 한결같이 짧은 치마에 양장을 하고 손에는 「파라솔」을 들었다.
『여보 시원스럽게 어울리지』 무심코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아내는 태연스런 표정이긴 해도 어딘가 부러운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새색시로 3년이 넘도록 유행 옷감 한번 사 본 일이 없었다. 가을엔 햅쌀이라도 몇 말 팔아 아내의 옷감을 한 벌쯤 마련할까보다.
먼 훗날을 향하여 거친 손 마주잡고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우리대로의 행복을 느끼며 고된 하루를 지루한 줄 모른다. <박덕내·28·농업·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2리 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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