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먹은' 아리수 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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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수돗물 ‘아리수’의 지난해 유수율은 94.5%입니다. 도쿄(95.8%)보다는 낮지만 로스앤젤레스(94%), 파리(91%)보다 높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윤석우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시설관리부장은 2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유수율은 정수장에서 생산된 물이 가정까지 도달하는 비율이다. 유수율이 높으면 그만큼 운반 과정에서 새는 물의 양이 적고 외부 불순물의 유입이 적어 수질이 깨끗하다는 걸 뜻한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자료에서 “그동안 노후 수도관을 꾸준히 교체해와 1989년 55.2%인 유수율이 23년 만에 39.4%포인트나 상승했다”며 “녹이 잘 슬지 않은 재질로 수도관을 바꾸며 안전하고 맛있는 아리수 역시 더욱 깨끗하게 공급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아리수 사업이 시작된 2007년 유수율은 91.4%다. 지난해 유수율과 비교하면 3.1%포인트 정도 오른 것뿐이다.

 서울시는 ‘마시는 수돗물’을 표방하며 2007년 ‘아리수’사업을 시작했다. 시내 6개 정수장에 설치된 고도정수처리 장치를 통해 수돗물에서 나는 특유의 맛과 냄새를 없앴다. 기존에 없던 오존 소독 과정 등도 추가해 수질을 향상시켰다.

홍보비용 등을 합쳐 2007년부터 올해까지 아리수 사업에 들인 비용은 약 5000억원이나 된다. 그러나 아리수는 아직까지 시민들에게 마시는 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서울시민 2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만이 아리수를 그대로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리수 사업 이후 국내 생수 판매량은 2007년 254만8000t에서 지난해 355만t(추정치)으로 크게 늘었다. 국내 정수기 설치 비율은 2007년 43.7%에서 지난해 58%로 증가 추세다. 이로 인해 판매목적으로 약 47억원을 들여 만든 350ml 페트병 아리수는 서울시와 정부기관, 가뭄·수해 등 재해지역 지원품 형태 등으로만 쓰이고 있다.

 아리수의 수질 자체가 좋아졌더라도 가정 내 배관이 낡으면 소용없다는 것도 문제다. 고려대 최승일(환경시스템공학) 교수는 “서울시 발표대로 유수율은 향상돼 왔지만 여전히 개인 재산인 가정집의 내부 수도관은 시가 함부로 교체를 못한다”며 “이로 인해 오래돼 부식된 수도관을 통해 수질이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강시중(31)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15년이 넘었다”며 “실제 시음회 등에서 마신 아리수의 수질은 믿음이 가지만 정작 집의 수도관을 믿지 못해 먹는 물은 정수기를 쓴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먹는 물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변화를 감안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김문조(사회학) 교수는 “건강에 대한 생각이 높아지며 물에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사회 인식이 형성돼 있다”며 “생수와 다를 바 없다며 아리수를 홍보하는 데 힘쓰기보다 염소 유출 같은 사고를 줄여 수돗물에 대한 안전도를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손국희·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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