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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권력 이동 … 재팬스쿨 지고 차이나스쿨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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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일 관계는 얼어붙고 있지만 한·중 간엔 역대 어느 때보다 훈풍이 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예다.

 중국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외교 기조와 함께 외교부 내의 ‘차이나스쿨’(중국 라인을 일컫는 말)이 주목받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20년간 외교부엔 ‘중국통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나 박 대통령 당선 이후 외교부 내 곳곳에 포진한 차이나스쿨이 약진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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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 라인인 ‘워싱턴스쿨’이나 일본 라인인 ‘재팬스쿨’ 일색이던 주요 보직에도 차이나스쿨이 속속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외교부 내 최고 엘리트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북핵 라인이다.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외시 14기), 노규덕 평화외교기획단장(21기), 여승배 북핵외교기획 부단장(24기) 등이 차이나스쿨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동북아국은 중국 업무가 주종이 된 양상이다. 중국통인 박준용 국장(20기)에 이상덕 심의관(22기) 등이 주류가 됐다.

중국 연수를 거쳐 주중 공사와 총영사를 지내는 등 중국에서 2차례 근무한 신봉길(12기) 한·중·일 협력사무국 사무총장 같은 정통 차이나스쿨 뿐 아니라 외연을 확장한 범 차이나스쿨도 주목을 받고 있다. 범 차이나스쿨의 특징은 기존 워싱턴스쿨과는 달리 미국·중국, 일본·중국, 다자·중국 등 두 분야 이상에서 전문성을 갖춘 ‘양수겸장(兩手兼將)형’이 많다는 점이다.

 임성남 본부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만 정무참사관(1998~2000년)을 거친 뒤 북미1, 3과장을 거쳐 주중공사(2009~2011년)를 지냈다. 중국어에 능하고 중국 공산당 등과 인적 교류가 많아 북핵 외교 때 미·중 양측과 소통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경수 신임 차관보(15기)도 주일공사를 지내 일본통으로 분류되면서 주중공사 참사관과 남아시아태평양국장을 맡은 양 날개형이다. 그 밖에 김재신 독일대사(14기)가 일본대사관 참사관과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고 배재현 의전장(15기)이 주홍콩영사와 중국과장을 지냈다. 외교부 출신 김형진 청와대 외교비서관(17기)은 주중국 1등 서기관을 거쳐 북미국장을 지냈다.

 임 본부장 등 외시 15기 내외를 차이나스쿨 1세대라고 한다면 외시 20기 안팎은 차세대로 불린다. 이들 중엔 92년 수교 이후 중국 본토 연수를 거친 이가 많다.

 현재 외교부 내에서 중국 본토로 연수를 다녀온 이들은 50~60여 명이다. 박준용 동북아국장(20기)이나 이영호 재외동포영사국 심의관(22기) 등은 선두주자 격이다. 이들 중 여성인 박은하 개발협력국장(19기)이나 오영주 개발협력심의관(22기)은 중국뿐 아니라 다자외교 전문가이기도 하다. 박은하 국장의 경우 2005년 주중국 1등 서기관을 거친 후 지금도 중국 외교관들이 안부를 가장 많이 물어보는 외교관이라고 한다. 이외에 중국 근무만 8년 이상 한 박기준 동북아 2과장(28기), 김영완 평화체제과장(27기), 홍순창 재외국민보호과장(29기), 김건 원자력협정 팀장(23기) 등이 차세대 그룹으로 분류된다.

 외교관들의 근무 선호도가 ‘북미>일본>중국’에서 ‘북미>중국>일본’으로 바뀐 건 이미 오래전이다. 외교부 인사 담당자는 “10년 전부터 중국 선호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지금은 미국, 유엔과 더불어 중국이 가장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외교부는 2011년 동북아국 내에 중국과를 추가로 신설했다. 8명에 불과했던 중국 담당 외교관들은 지금은 28명으로 늘었다.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은 퇴임 전 “지난해 업무의 80%를 동북아국이 맡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김하중 주중대사나 석동연 전 주홍콩 총영사 등이 차이나스쿨의 ‘대부’로 불려왔지만 후진이 미약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외교부 1차관으로 중국통을 임명하려다가 인재가 없어 임명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관을 키우는 데 15~20년 이상 걸린다”며 “5년 뒤쯤엔 보다 중국을 잘 아는 차이나스쿨 출신들이 외교 일선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전문가인 고려대 서진영 명예교수는 “중국만 아는 중국통이 아니라 서방을 이해하며 중국의 방향을 읽는 복합적 시각의 외교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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