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리포트] 부부싸움 잦은 집 자녀들 우울증 확률 높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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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불화가 어린 자녀의 우울증 발병과 높은 연관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정호 교수팀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 30대 초반 우울증 환자 26명(남자 7명, 여자 19명)을 같은 연령대 및 성별의 정상인과 비교·조사했다. 조사 항목은 ‘정서적 학대·신체적 학대·방임·성적 학대·부모 싸움 노출’이라는 생애 초기 5가지 주요 스트레스 요소로, 이들 항목과 우울증 발병과의 관련성을 살폈다. 그 결과, ‘부모의 싸움 노출’ 요소만 통계적으로 유일하게 우울증 발병과 관련이 있었다. 이번 연구는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의학적 설문지와 개인 면담을 통해 진행됐다.

석 교수는 “성장기의 신체·성적 학대·방임 등이 우울증과 관련 있다는 연구는 있었지만 부모의 불화가 우울증 발병과 관련성이 높다는 것을 실제 환자 조사를 통해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부 싸움이 아이의 정서에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실제 아이에게 상당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석 교수는 “아이에게서 주의력 부족이나 야뇨증·손가락 빨기·손톱 물어뜯기·틱(Tic) 장애가 나타나거나, 학습 부진·심한 투정·대인관계 트러블 등이 있으면 부모의 잦은 다툼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부모의 불화로 인한 자녀들의 정신적 외상이나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대책이 있을까.

석 교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회복탄력성은 외부적 상황 혹은 내면으로부터 시작된 어려운 과제나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다. 이렇게 해서 초기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회복시킨다. ‘자기조절능력’ ‘대인관계능력’ ‘심리적 긍정성’ 등의 요소가 포함된 개념으로, 최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긍정심리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 약물·상담 치료도 필요하다. 석 교수는 “우울증 환자가 초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약물 치료를 받고, 회복탄력성 향상을 위한 상담 치료 프로그램을 병행한다면 빠른 시간 안에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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