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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탐사] 바보에게는 쓸 약이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8호 31면

“바보에게는 쓸 약이 없다.” 일본 속담이다. 자기 잘못을 모르는 사람한테는 백약이 무효라는 얘기다. 우리 속담엔 이런 게 있다. “반푼이 명산 폐묘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명산에 쓴 묘를 없애듯 일을 그르친다는 뜻이다.

 바다 너머 양쪽 땅에 두 나라 속담을 합쳐도 모자랄 바보, 반푼이들이 있다. 불리는 이름도 똑같다. 과분하기 짝이 없는 ‘민주당’이다. 한때는 그럴듯하던 적도 있었다. 대통령도 만들었고 총리도 냈다. 그런데 선거에 지고 나더니 그야말로 바보, 반푼이가 됐다. 제1야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제 앞가림도 힘들어 보인다.

 일본 민주당은 지난해 말 총선 패배 후 아직까지 정신 줄을 놓고 있다. 익히 예상됐던 패배인데도 그렇다. 여당인 자민당과 제2야당 일본유신회가 개헌에 뜻을 같이하며 거침없이 내달리는데 민주당은 아예 트랙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분위기를 수습한다고 2월 말 당대회를 열긴 했다. 새로운 강령도 채택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 표현 없이 무기력하기만 하다. 가장 뜨거운 주제인 개헌에 대한 강령이 이렇다. “국민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헌법을 구상한다.” 때 되면 밥 먹으러 가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상태가 이러니 정말 백약이 무효인 것 같다. 대망론이 나올 정도로 인기 있는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간사장도 속수무책이다. 며칠 전 TV토론에서 “개헌 발의 요건을 현행 의원 3분의 2에서 과반으로 낮추는 건 안 된다”고 강력 주장했지만, “글쎄 그건 알겠는데, 개헌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민주당 입장을 듣고 싶다”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의 힐난만 들었을 뿐이다.

 사실 바다 건너 민주당을 걱정해주기엔 이 땅의 민주당 코가 석 자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됐는데 여전히 누구 책임이냐를 따지고 있다. 늦었지만 대선을 평가한 보고서도 나왔다. 패배 원인을 정확히 따져 반성하고 다음엔 잘해보자는 취지라는 거다. 그런데 그걸 놓고 벌이는 행동들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눈을 우아하게 뜨고 봐도 그렇다. 그저 ‘다 네 탓이고 그러니 이제 내가 좀 해먹어야겠다’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새삼스레 대선 후보의 자질을 거론하는 것도 웃긴다. 어찌됐건 역대 2위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다. 대선 경선 때 국민이 뽑은 후보라고 호들갑 떨던 게 누군가.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안철수 탓”이라는 얘기엔 헛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안철수가 후보 사퇴했을 때 “당을 맡길 수도 있다” “문재인·안철수가 아예 새 정당을 만들라”고 흥분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한데 말이다.

 대선평가보고서가 평하듯, 지난 대선은 구도상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 선거였다. 하지만 물고기 지능보다 조금이라도 낫다면 나은 만큼만 돌이켜보자. 지난해 5월 총선 때는 안 그랬던가.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연거푸 졌다면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걸 느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런 이상한 정당에서 어떻게 국민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겠나. 어찌 보면 노원병 보궐선거에 후보도 내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이유다.

 미안하지만 민주당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바다 건너 민주당은 더욱 그렇다. 국가와 사회의 건강을 위해 꼭 있어야 할 곳에 제1야당이 자리하지 못하는 게 걱정스러워 하는 소리다. 바다 건너 민주당은 더욱 걱정스럽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독주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까닭이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멈출 곳이 어딜지는 자명한 일이다. 아베노믹스와 개헌 추진, 교과서 재검토로 이어지는 아베의 ‘강한 일본’은 오랫동안 풀 죽었던 일본 국민에게 잠시 위로가 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적절한 견제가 없다면 결코 대내외적으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일본을 약속하지 못한다.

 우리네 사정도 마찬가지다. 야당의 눈치를 본 흔적이 없는 인선으로 짜인 정부가 건강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남측 정부”란 말이 공공연히 나왔을 때도 들리지 않던 제1야당의 목소리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한반도 위기상황에서는 더욱 묻혔다. 이래서는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힘 있는 한국을 위해서라도 제1야당이 힘을 되찾아야 한다. 필요한 것은 책임 추궁이 아니다. 반성을 해야 한다면 눈앞 이익만 좇아 좌우로 오락가락한 게 가장 먼저다. 이제는 노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가장 많은 지지자를 얻을 수 있는 길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4년 후가 아니라 40년 후에도 미래가 없다. 그것은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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