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대북 메시지에 혼선 준 정홍원 총리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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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집권 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국무총리가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것도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외교권을 두고서다.

 정홍원 총리는 어제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북한과 관련, “지금 현재 우리 입장에서는 주먹을 쓰겠다고 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 주먹이 소용이 없다고 느끼게 해야지 그런 사람에게 사과나 대화를 하자는 것은 오히려 더 악화시킨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저런 입장에서 그런(대화) 걸 얘기하기 시기가 이르지만 저쪽에서 진지한 대화 자세 요구하면 얼마든지 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지금의 태도는 대화보다는 전쟁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쟁 억지력을 공고히 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현 시점에서 북한과의 대화는 시기상조’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20시간 전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일 의원들에게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한때 청와대와 통일부에서 대화 제의냐를 두고 해석 논란이 벌어졌으나 당일 밤 ‘사실상 대화 제의’로 정리됐었다.

 그런데 정 총리가 바로 다음 날 박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한 모양새가 됐다. 정 총리는 사후에 “대화 안 하자는 게 아니라 대북 억지력을 충분히 갖추면서 대화의 문도 열어놓겠다. 이게 안 되니 유감스럽다란 의미”라고 해명했다.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는 거다. 외교안보의 언어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취지도 메시지다. 정 총리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정 총리의 외교안보 역량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된다. 정 총리가 만일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걸 알면서도 발언했다면 정부 출범 40여 일 만에 총리가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거니 국정 혼란이다. 책임총리는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란 거지 충돌하란 게 아니다.

 어느 쪽이 됐건 정 총리의 발언으로 대북 메시지에 혼선이 생겼다. 북한에 굴복으로 보일 수 있는데도 용기를 낸 박 대통령의 진의를 북한이 오해할 수 있어서다. 정 총리가 큰 실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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