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걸려 전쟁영웅 찾아낸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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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쟁영웅을 잊지 않고 기억해 내는 미국의 집념이 또 하나의 기적을 일궜다. 미 국방부는 2004년 북한에서 발굴한 미군 유해들에 대한 DNA 조사와 치아 감식 작업 등을 통해 한국전쟁 중에 사망한 돈 C 페이스(사진) 중령의 유해를 최종 확인했다고 10일(현지시간)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페이스 중령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11월 한국에 도착했다. 32보병연대 1대대 소속인 그는 31연대전투단에 배속돼 최전선에 투입됐다. 그가 배치된 곳은 6·25 전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였다. 장진호 전투는 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3일까지 미 해병 1사단 등 1만5000여 명의 연합군이 개마고원 장진호 주변에서 12만 명의 중공군에 포위됐다가 치열한 교전 끝에 포위망을 뚫는 데 성공한 전투로 유명하다.

 당시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에 포위돼 악전고투하던 중 페이스 중령은 상관이 실종되는 상황을 맞았다. 곧바로 전장에서 그는 31연대전투단의 지휘권을 넘겨받아 부대원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는 작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12월 1일 유탄에 맞아 부상을 당했고 이튿날 사망했다.

전쟁통에 그의 유해는 수습되지 못한 채 야산에 묻혔다. 미 정부는 장진호 전투에서 보인 공적을 인정해 페이스 중령에게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그로부터 54년의 세월이 흘렀다. 북한과 유해 발굴 협상을 벌인 미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2004년 북한 땅에 들어갔다. 생존병사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장진호 전투 현장에 도착한 유해발굴단은 페이스 중령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미군 유해들을 수습했다.

문제는 유해 확인 작업이었다. 이미 흙과 다름없는 유해를 수습한 유해발굴단은 법의학자와 과학자들 손에 넘겼다. 조사팀은 페이스 중령의 동생에게서 유전자 샘플까지 추출해 DNA 확인 작업과 치아 감식 작업을 벌였다.

현대과학을 총동원한 작업 끝에 조사팀은 지난해 말 마침내 페이스 중령의 유해임을 최종 확인했다. 54년 만의 유해 발굴, 8년간의 신원 확인 작업 등 모두 62년 만에 일군 개가였다.

 페이스 중령의 유해는 17일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페이스 중령의 딸인 바버라 브로일스(66)는 10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 국방부 유해발굴단의 끈질긴 노력에 감사한다”며 “조국이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아 기쁘다”고 말했다. 남편, 세 아이와 함께 국립묘지 안장식에 참여하겠다고 한 브로일스는 “아버지는 62년 동안 행방불명 상태였다”며 “최근의 북한 상황 등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기적”이라고 감격해 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2000명 이상의 미군이 포로로 잡혔다가 사망했으며, 이들을 포함해 모두 7900여 명이 현재도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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