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북한 도발하는데 대국외교가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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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위기는 기회다.” 한반도 위기와 관련해 중국이 처한 입장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중국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객관적 국제사회 분위기는 “그렇다”다. 왜 그런가. 지금 중국은 꿈의 범람 시대다. 출범 한 달도 안 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중심의 새 지도부가 내건 슬로건 ‘중국의 꿈(中國夢)’ 때문이다. 꿈의 궁극적 요체는 명료하다. 공산정권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50년 현대적 문명국가를 만들어 대내외적으로 미국을 능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외적 꿈의 중심에 시진핑이 주창하는 ‘대국외교’가 있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중국의 핵심이익 존중과 공영을 촉구하는 그 대국외교다. 시 주석은 지난달 러시아와 아프리카 방문 시 대국외교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보여줬다. 신화통신은 그것을 ‘적극, 자신(自信), 겸허, 공영’이라는 네 단어로 요약했다. 여기서 시 주석이 가장 강조했다는 ‘적극’은 “말 그만하고 행동하라”는 의미다.

 그래서 시 주석의 북한 도발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에서 그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가 중국 인민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가 중국의 핵심이익에 속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겠다는 뜻이다. 중국이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전후해 세 번이나 북한에 특사 파견을 시도했다 거절당했다는 사실은 분명 ‘행동하는 대국외교’에 부합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지난달 말 북한이 중국에 특사 파견을 요청하자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아쉬우면 이제 너희(북한)가 오라”는 얘기다.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 80%에 달한다는 자국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대국외교는 여전히 ‘감정 모드’ 상태로 보인다.

 일부에서 지적한 대로 중국은 ‘전쟁 불가’라는 마지노선을 그어 놓고 한반도 위기의 손익계산에 열중할 수도 있겠다. 또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대북 압력을 넣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아직도 북한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이 최근 한반도 위기와 관련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외교부 대변인의 녹음기 같은 논평, “매우 유감이며 당사국들은 냉정을 유지하고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며…,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를 기억한다. 미국과 국제질서 재편을 논하겠다는 시진핑의 대국외교는 국제사회의 신뢰 없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중국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하는 행위의 당위성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중국은 지금 대국외교 초석을 다지기 위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치려 하고 있다.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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