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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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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선거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1백31개 지역구마다 예외 없이 동창회, 화수회, ×××친목계 등 헤아릴 수 없는 모임들이 들놀이다, 정기총회다 하여 막걸리와 선심의 난무도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선거 때면 한번씩 발돋움을 하는 수많은 단체들. 이 가운데는 바로 국회의원 지망생들이 한표를 노리고 4년동안 가꾸고 다듬어 놓은, 또는 그런 손길이 뻗쳐오기를 기대하여 만들어진 사조직이 그 태반이다.
정당의 조직과는 달리 이 사조직은 후보자와의 지연 혈연 학교동창 종교 고용 친소 관계 등 사적인 특수관계로 얽혀진 비공식 개인조직이다.
의사당에로의 지름길을 찾는 후보자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손발처럼 움직여줄 사조직 가꾸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집권당의 경우 사조직은 당 조직을 보완하는 작용이 그 주된 기능이지만, 공식조직이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미약한 야당의 경우 사조직이 곧 당기반에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사조직의 요원들 중에는 『그분이 당선되면 한자리 얻겠다』는 기대가 열성의 밑바탕이 되어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종씨인데』 『우리 마을 사람이니까』등 막연한「유대의식」에서 출발, 한표를 쫓거나 한표의 행방이 결정되고 있다. 씨족관념이 「사조직」으로 직결되는 경우는 「도시화」의 진도가 늦은 지역일수록 더하다. 선거 때마다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사이의 씨족대립이 운위되는 안동의 경우-. 현역 의원인 안동 권씨 문중의 권오훈씨를 물리치고 공화당 공천을 딴 안동 김씨 문중의 김대진씨가 출마하자 권씨는 『우리 안동 권씨 문중표는 한표도 김씨에겐 안 갈 것이다』고 공언하는가 하면 『김씨가 당선되면 관직에 있는 안동 권씨들은 서리맞을지 모른다』는 등 이조 때에나 있을 법한 얘기들이 나돌 정도로 「대립의식」이 뚜렷하다.
강릉·명주의 강릉 최씨인 최익규 (공화) 씨와 강릉 박씨인 박용익 (자유) 씨간의 씨족싸움이나 영월 정선의 장·엄·정 3대성사이에 벌어진 격전 등 「대립의식」이 강한 지역의 후보자들은 후보자의 소속정당보다는 혈연관계를 내세워 호소하고 있다. 또 그런 전술이 꽤 먹혀 들어가고 있다. 한 지역구에 여러대 씨족이 있을 경우에는 후보자를 지낸 씨족은 후보자를 내었거나 내지 않은 문중표를 낚기 위해 그 문중의 지도급인사를 선거사무장으로 앉히는 경우도 있다. 후보자는 자신이 평소에 관계하고있던 이해집단과 그가 신봉하는 종교까지 득표전에 동원한다.
김성진씨 (서울종로=공화) 주변의 의사회, 서곤수씨 (대구북서=공화) 의 기반인 직물협회, 그밖에 양조협회 약사회 권농회 재향군인회 등 후보자와 연관을 맺고있는 이해집단의 구성원들은 『우리×××회장이 당선되면 회원들에게 ××혜택을 줄 것이다』라는 기대나 「공약」에 희망을 걸고 『자기 일처럼』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
천주교 신자인 이효상씨와 신교도인 정일형씨 등 종교인들은 선거 때마다 자기지역구에서 별로 동요 없는 고정표를 갖고있다. 종교표에 초조한 모 후보는 『새벽에는 성당, 낮에는 교회, 밤에는 법당』을 찾아다니며 1인3역으로 종교표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한다.
기독교표와 불교표는 때때로 방향이 어긋날 때가 있지만, 「가톨릭」표는 비교적 표의 분산이 없는 것이 특색.
종교표중 가장 행방이 뚜렷한 몰표는 부산서구에 있는 태극도 교표와 경기도 소사와 덕소에 있는 박태선 장로교회. 이곳에서 출마한 공화·신민당의 후보자들은 모종공약을 내놓는 등 이 몰표를 자기편으로 끌어오기 위해 숨가쁜 득표전을 벌이고 있다. 각급 학교관계연고도 무시할 수 없는 사조직의 하나. 후보자들은 초·중·고·대학의 동창회를 활용, 선건전에 이용한다. 이 때문에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라이벌」이 되어왔던 두 학교에서 한사람씩 대표주자가 나올 때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조연하씨 (순천중=신민) 와 김우경씨 (순천사범=공화) 와 이종한씨 (충북농업=공화) 와 이택희씨 (충북중=신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학교대항선거전」은 『우리선배나 동창이 당선되어야 나도 한자리 할 수 있다』는 이해관계와 모교애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투표행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5·3대통령 선거 때 『이왕이면 내 고장 사람』이란 지연의식 때문에 경상도유권자들이 박정희 후보에게 몰표를 던져준 것처럼 국회의원선거에 있어서도 『내 마을 사람, 내면 사람, 우리군 사람』이란 지연의식이 투표동기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상주의 김천수씨 (공화=봉화)와 홍정표씨 (신민=전남), 금천의 이병하씨 (신민=문경), 안동의 김대진씨 (공화=영주) 등은 단순히 「외지인」이란 이유 때문에 각각고전을 겪고있는 반면 이들의 「라이벌」들은『고향 일은 고향사람에게…』라는 「슬로건」으로 지연의식에 호소, 그점에선 선거전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두군이 합쳐 한 선거구가 된 곳은 대부분이 군단위로 양분되어 『이번에는 절대로 우리군에서 뺏길 수 없다』고 팽팽한 맞씨름을 하고있는데 대체로 이런 경향은 투표에까지 투영되고 있다. 회사나 공장을 경영하고있는 후보자들은 그 회사의 사원이나 직공들을 사조직으로 선거전에 투입, 단단히 재미를 보고 있다. 대구시의 모공화당 후보자는 그가 경영하는 공장의 직공중 자기선거구에 주민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유권자들을 자기선거구에 전적시키다 신민당으로부터 고발당한 일까지 있다.
이같이 고용관계로 얽힌 한표의 주인공들은 『회사가 잘되어야 나도 잘살 수 있다』는 공동운명체의식 때문에 투표행위에 상당한 구속력을 받고 있다. 여하튼 이러한 사조직은 임시적인 것이지만, 유권적으로 움직여준다면 특표에는 당 조직을 앞지르는 경우가 흔히 있기 때문에 득표기반이 이미 대충 굳어져버린 종반싸움은 이 「사조직」의 대결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태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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