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헤쳐모여' 신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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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개혁파 의원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29일엔 두가지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양당의 개혁파 의원들이 시민단체와 함께 '정치개혁추진 범국민협의회'(가칭)를 결성키로 한 것이 그 하나다. 한나라당 이부영.김문수.원희룡 의원과 민주당 이해찬.천정배.이호웅 의원이 중심이다. 이들은 이날 국회에서 정치개혁 토론회도 열었다.

여기에다 여야 개혁성향 의원 17명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對)이라크 전쟁 반대성명서'를 발표했다.

민주당에선 김근태.신기남.김영환.이재정.이호웅.이창복.이종걸.송영길.김성호.정범구.심재권 의원 등이, 한나라당에선 김홍신.서상섭 의원이 성명서에 서명했다. 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 의원도 가담했다.

이로써 정치권의 개혁그룹이 소속 정당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특정 사안이나 이슈를 중심으로 연대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치개혁을 위한 모임에는 민주당 '열린개혁포럼'회원들과 한나라당 '국민속으로'회원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양당에선 범국민협의회에 가입할 의원들의 숫자가 70여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경우 협의회는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돼 사실상 '제3당'의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이부영.이호웅 의원 등도 "뜻을 같이하는 의원들을 모두 참여시켜 정치개혁을 반드시 이루겠다"며 세력화를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관심은 개혁성향 의원들의 움직임이 이념과 노선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으로 이어질지 여부다. 다수는 그럴 가능성을 부인한다.

이해찬.이호웅 의원은 "정치개혁을 하자는 순수한 취지에서 협의회를 만들기로 한 것이며, 정계재편 얘기는 너무 앞서가는 관측"이라고 말했다. 이부영.김문수 의원도 같은 말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의원 빼내오기'를 통한 인위적인 개편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계가 자연스런 방법으로 재편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현재 변신을 위해 몸부림치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서 내부 균열이 생길지 모른다. 민주당에선 신.구주류의 갈등이, 한나라당에선 보혁(保革)갈등이 '헤쳐모여'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 '국민속으로'간사인 김홍신 의원은 "정계를 좀 개편하면 어떠냐. 바뀌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양당의 개혁성향 의원들이 물밑에서 활발하게 접촉 중인 것도 변수다. 이해찬 의원은 "한나라당 '국민속으로'의원들과는 대화하기가 편하며, 사적으로 가끔 만난다"고 했다.

따라서 지금은 '느슨한 개혁연대'쯤으로 보이지만 총선을 앞두고 '개혁정당'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을 신주류가 완전히 장악하고, 한나라당 당권이 보수파에게 넘어갈 경우 이념.노선 중심의 정계재편 가능성은 더 커질지도 모른다.

이상일 기자 <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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