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거울로 오늘을 보다] '세계 공용어' 외면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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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혹시 '요괴인간'이라는 일본 만화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나도 인간이 되고 싶다"고 외치는 요괴인간들의 내면 세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만화는 서구인에게 문명인으로 대접받기를 갈망했지만 냉정하게 '왕따'당하고 만 일본인들의 심리상태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화란 문화의 중심보다 변방에서 일어나기 쉬운 법. 동양 문화의 변방이었던 일본이 서구 따라하기에 먼저 나설 수 있었듯이 윤치호도 비슷한 처지였습니다.

부친이 서자였던 윤치호는 토인비의 표현을 빌리자면 밀려드는 변화의 물결에 맞설 수 있는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였습니다. 그런데 "동양의 낙원이자 세계의 정원인 축복받은 일본에서 살고 싶다"는 그의 독백은 정체성을 상실한 한 인간의 정신적 방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분별한 영어 배우기 열풍이 결국은 윤치호처럼 한국과 미국 어느 사회에도 속하지 못할 불우한 인간들을 양산할 뿐이라는 박선생님의 지적은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기를 포기할 수 없듯이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무작정 외면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영어를 배우긴 하되 영어를 통해 '고급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거라 믿는 '요괴인간 증후군'에 걸리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최초의 미국 유학생 유길준(兪吉濬.1856~1914)에게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영어를 배우고 기독교를 깊이 연구했지만 전통적 가치관을 폐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양반관료의 횡포로 일반 국민이 공평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폐단을 예리하게 비판했지만 조국이 적절한 개혁만 단행한다면 백인종들의 문명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는 "미국은 통상의 상대로서 친할 수 있을 뿐이며, 위급함을 구해주는 우방으로서는 믿을 바 못 된다"고 일갈함으로써 미국을 '약자를 돕는 정의의 나라'라고 여긴 동시대인들의 피상적 인식에 경종을 울린 바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내면으로 침잠해버린 윤치호와 달리 그는 서구에 대해 극단적 패배의식이나 열등감을 갖지 않고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쳐 자신의 식견을 동포들과 공유하는 데 힘썼지요.

'서유견문(西遊見聞)'(1895).'노동야학독본'(1908).'대한문전(大韓文典)'(1909)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는 자신이 이룩한 바를 국민과 함께 나누려 한 그의 삶의 소산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랬기에 조국의 미래를 낙관하며 한 걸음씩 천천히 점진적인 개혁을 모색하는 중용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고,국권 상실 후에도 일제에 굴종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봅니다.

개화기 조선인들이 순진하다 싶을 정도로 호의적인 미국관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해방 후 한.미 관계를 살펴볼 때 두 나라 관계가 미국 측의 일방적인 전략적.경제적 이해타산에만 휘둘렸다고 인식하는 것도 비주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우리는 해방 후 미국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이를 이용해 역사상 최초로 서구 중심 세계질서 속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후원자와 수혜자' 혹은 '침략자와 피침략자'의 관계로 보는 극단적 입장, 즉 한.미관계가 미국의 일방적인 이익만을 위해 전개된 것이라는 시각에서 탈피하는 것도 득중(得中)의 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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