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대 공기업 빚 324조원 … 올 국가 예산과 맞먹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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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합병으로 출범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38조3900억원이란 막대한 빚에 시달리고 있다. 연 3%의 이자율로 따져도 연간 이자가 4조원이 넘는다. 부채비율은 467%에 달한다. 정부 돈으로 세운 공기업이 아니라면 도저히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신도시·혁신도시·보금자리 등 각종 개발사업을 벌일 때마다 LH를 동원해 빚을 얻어 땅을 사게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LH는 세종시 남쪽에 정부청사를 이전해 신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에도 동원됐다. 지금까지 행정복합도시에 들어간 10조원의 사업비 중 LH가 떠맡은 금액은 7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세운 투자계획(총 22조5000억원)에 따르면 LH는 세종시에 추가로 7조원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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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공기업의 부채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8대 공기업의 부채는 총 324조원에 달했다. 1년 전보다 33조원이나 늘어나 국내총생산(GDP·1272조원)의 25%를 웃돌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일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재무현황 중 공기업 부문을 본지가 별도로 분석한 결과다. 자산 5조원 이상이면서 계열사가 있는 한국전력·토지주택·도로·가스·수자원·철도(코레일)·인천공항·부산항만공사가 대상이다. 이들 공기업의 빚을 모두 합치면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민간 5대 그룹의 부채총액(303조원)보다 21조원이나 많다. 올해 정부 예산(342조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정부가 거둬들인 국세 수입(203조원)에 비해선 121조원이나 초과한다. 정부가 국민들이 낸 세금을 한 푼도 다른 데 쓰지 않고 모아서 해당 공기업의 빚을 갚더라도 1년8개월이나 걸리는 빚 규모다. 5000만 국민이 국가부채(445조원)와 별도로 1인당 650만원꼴의 공기업 빚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5년 전 ‘4대 강 살리기’ 사업에 뛰어들기 전까진 건실한 재무상태를 자랑하는 우량 공기업이었다. 2007년 말엔 주주(정부)의 몫인 자본(9조8700억원)으로 빚(1조5800억원)을 다 갚고도 8조원 넘게 남았다. 하지만 4대 강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명박 정부는 한강·금강·영산강·낙동강을 정비하는 사업에 22조원을 쏟아부었다. 이 중 8조원은 정부 금고에서 직접 돈을 꺼내 쓰지 않는 대신 수자원공사에 부담시켰다. 4대 강 사업으로 국가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을 의식한 조치였다. 갑자기 큰돈이 나올 데가 없어 고민하던 수자원공사는 결국 빚을 얻어 4대 강 사업에 충당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수자원공사의 빚(13조7000억원)은 자본(11조2400억원)보다 2조4600억원이나 많아졌다.

 한국전력(95조7400억원)과 가스공사(31조5200억원)·도로공사(25조3400억원)도 수십조원의 빚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코레일은 자본(5조5000억원)보다 빚(14조7000억원)이 9조2000억원이나 많았다. 코레일은 이제 더 이상 채권시장에서 돈을 끌어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철도공사법에 의해 자본의 두 배를 넘는 회사채를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8대 공기업 중 자본이 부채보다 많아 부채비율이 100% 미만인 곳은 도로(97%)·인천공항(57%)·부산항만공사(41%) 세 곳뿐이다. 코레일은 지난해 2조8640억원의 적자를 냈다. 2005년 철도청에서 공기업으로 전환한 이후 가장 나쁜 실적이다. 한국전력의 적자 규모(2조1310억원)도 2조원대에 달했다. 반면에 LH(1조2170억원)·가스공사(5000억원)는 지난해 결산에서 흑자를 기록했다.

 홍성걸(행정정책학부) 국민대 교수는 “공기업 부채는 방만한 경영의 문제도 있겠지만 정부가 재정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공기업에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며 “공기업 부채도 국가부채로 보고 정부가 총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 조세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은 “공기업 부채든, 국가부채든 결국은 모두 미래 세대의 부담이 된다”며 “사업별 예산제도를 도입하고 공기업 부채를 소관 부처의 업무평가에 반영하는 등 제도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주정완·박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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