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골잡이 정대세 “내가 울면 … 수원 팀과 팬들은 웃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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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공격수 정대세(29)는 소문난 울보다. 2010년 6월 15일 열린 브라질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경기에 북한대표팀 공격수로 출전한 그는 킥오프를 앞두고 굵은 눈물방울을 쏟아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꿈에 그리던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과 경기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팬들은 그런 그에게 ‘울보 스트라이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정대세가 또 울었다. 이번엔 K리그가 무대. 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구 FC와의 K리그 클래식 5라운드 경기에서 그는 전반 32분 동료 서정진(24)의 패스를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득점에 성공했다. 한 달 동안 오매불망 기다려온 K리그 마수걸이 골이었다. 득점 직후 정대세는 일어서지 못했다. 골 세리머니도 없이 그라운드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흘렸다. 몸을 일으켜 동료 공격수 스테보(31)와 포옹한 그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정대세가 6일 대구 FC를 상대로 ‘2013 K리그 클래식’에서 첫 골을 터뜨린 뒤 포효하고 있다. 그는 얼마 후 그라운드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흘렸다. [중앙포토]

 하지만 이번엔 눈물의 이유가 달랐다. 단지 끓어오르는 격정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대세는 8일 인터뷰에서 “그간 나를 믿고, 걱정하고, 기다려준 분들께 보답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눈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9일 열리는 가시와 레이솔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앞두고 일본 가시와에 머물고 있다. 지난 3일 수원에서 열린 가시와 레이솔과의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서 그는 페널티킥을 2개나 실축했다. 수원은 2-6으로 참패했다.

 정대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수원에 입단한 이후 여러가지 색다른 경험을 했다. 가장 흥미로운 건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관심이었다. “어딜가도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단순히 인사를 나누는 걸 넘어 ‘열심히 하라’ ‘빨리 골을 넣으라’는 격려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최근에 겪은 일이다. “지인들과 맥주 몇 잔을 나눈 뒤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대리운전을 이용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이 ‘정대세씨처럼 유명하고 훌륭한 운동선수가 술을 마시면 되겠느냐. 앞으로는 운동에만 전념하라’고 꾸중하시더라고요.” 멋쩍게 웃었지만, 친한 사람이 아니면 가급적 충고나 조언을 삼가는 일본 문화 속에서 자라난 그에겐 낯설고 당황스런 경험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대세는 그 기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단다. “나에 대한 적극적 관심은 한국 분들이 나를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란 걸 깨달은 거죠. 한국사람 특유의 정(情). 그 날 이후 저는 충고든 조언이든 모두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행동을 더욱 신중하게 하려 합니다.”

정대세는 9일 가시와 레이솔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과 14일 수원에서 열리는 FC 서울과의 올 시즌 첫 수퍼매치를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가시와전은 2-6 완패를 설욕하기 위해, 서울전은 K리그 대표 더비매치다운 경기력을 선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거다. “두 경기 모두 승리가 절실한 경기입니다. 저는 슬프거나 힘들 땐 절대로 울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울 일이 많길 바라죠. 그게 바로 팀과 제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가시와(일본)=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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