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구 궤도에 거대 자석 설치, 우주 입자 16조 개 검색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7호 08면

2011년 5월 왕복우주선 인데버(Endeavour)호의 마지막 비행. 우주선 짐칸에는 인류 과학의 새 장을 열 새로운 우주 관측 장비가 들어 있었다. 약 7t 무게의 알파 자기 분광계(Alpha Magnetic Spectrometer·AMS)다. 지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우주 입자 속에서 암흑물질을 찾아내기 위한 초대형 자석을 장치한 탐지 장비다. 암흑물질을 찾아내면 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의 최대 과제와 우주 탄생의 비밀이 풀린다.
지구 궤도를 돌며 우주선을 탐지한 AMS는 18개월 동안 250억 개의 기록을 지구로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4월 5일 유럽핵물리학연구소(CERN)의 연구팀은 “양전자의 존재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이 양전자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지만 이를 이해하려면 과학 이론이 좀 필요하다.
암흑물질은 말 그대로 암흑(dark)이어서 빛을 발사하거나 반사하지 않아 보이지 않는 물질을 총체적으로 말한다. 이런 생각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있었다. 물ㆍ불ㆍ흙ㆍ공기의 4원소설과 더불어 제5의 물질, 즉 암흑물질이 있다는 설도 병행돼 왔다.

우주의 비밀, 암흑물질 단서 어떻게 찾았나

빛 반사하지 않아 안 보이는 암흑물질
5원소설은 플라톤이 주장한 것이어서 ‘플라톤의 고체(Platonic Solids)’라고도 하는데 세상의 모든 물질은 이런 다섯 개의 모양을 가진 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주장이다. 암흑물질은 플라톤 주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인공위성이 우주로 올라가고 이어 허블 우주망원경이 지구 궤도에 올라 먼 우주를 정확히 관측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일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게 발견됐다. 그 우주의 팽창을 역으로 추적하니 시작은 대폭발(Big Bang)이었으며 그 폭발에서 나온 찬란한 빛이 지금은 마이크로파 형태로 우주 가장 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도 발견됐다.(※마이크로파는 파장이 짧은 전파로 우리가 쓰는 전자레인지에서 활용된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로 표현되는 바로 그 ‘창세기의 빛’인 배경복사를 분석한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세 번에 걸쳐 모두 7명이나 나왔다. 가히 노벨상의 보고다. 이런 과학적 연구에 의해 밝혀낸 우주의 콘텐트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우리 우주는 약 137억 년에 대폭발로 탄생했다.
2) 우주는 팽창 중이며 약 40억 년 전부터 더 빨라져 가속팽창하고 있으며 그 원동력이 되는 미지의 에너지가 ‘암흑에너지’다. 그러나 그 에너지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3) 우주의 성분은 ▶별과 지구, 사람과 산, 바다처럼 원자로 구성된 물질은 우주 전체의 4~5% 정도이며 ▶암흑물질은 약 21~22% ▶암흑에너지(오른쪽 아래 설명)는 약 74%다. <그래픽 참조>

오늘날 과학이 발달됐지만 인류는 우주에서 4~5%뿐인 보통 물질도 아직 제대로 모른다. 그중 암흑물질은 은하계의 회전속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존재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됐다. 줄에 달린 공을 돌리는 힘은 실을 통해 전달되는 힘, 즉 구심력이다. 그 구심력에 맞춰 공의 속도가 결정된다. 구심력과 속도는 비례한다. 은하계의 회전도 구심력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계산해보니 은하계 외곽의 회전속도가 구심력에 비해 너무 빨랐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시작됐다. 그 ‘보이지 않은 힘’을 암흑물질이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금 더 부연하면 그 암흑물질 덕에 우리 우주가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암흑물질을 추론한 사람은 괴팍하기로 유명한 불가리아 태생의 천체물리학자 즈위키(Zwicky)였다. 우주에 암흑물질이 있으며 그 양에 따라 우주 배경복사의 모양과 무늬가 달라진다. 복잡한 설명을 간단히 하면 이 배경 복사를 연구했더니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을 합해도 있어야 할 질량의 10%밖에 안 됐다. 나머지 90%는 어디로 갔는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 하자고 한 것이다.
암흑물질은 빛을 이용해 보는 망원경이나 전파를 이용하는 망원경에는 잡히지 않는다. 빛이나 전파를 내지도 않고 반사하지도 않고 그냥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중성미자(뉴트리노)처럼 통과는 하면서 물질과 일절 반응을 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빛ㆍ전파의 방해가 없으면 쉽게 찾을 것으로 보고 지하에 망원경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물질로 된 관측장비가 반물질인 암흑물질을 탐지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김제완 교수가 본 새뮤엘 팅 무엇이든 끊임없이 묻는 과학자다. 대학생이던 필자는 1960년대에 대학원생이던 팅 박사와 함께 컬럼비아대에 다녔다. 학구열이 왕성했고 엄청나게 따지는 사람이었다. 별 이상한 것까지 물었다. 심지어 ‘사람은 왜 발로 걸어야 하느냐’고까지 했다. 그래서 그가 “그렇다”고 하면 다들 믿었다.

그러나 20년 전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인 MIT의 새뮤얼 팅(Samuel C.C. Tingㆍ아래 사진) 교수가 독특한 방법을 고안했다. 그는 우주를 눈여겨봤다. ‘지구의 공기 때문에 차단되는 희귀입자들이 우주에선 좀 더 쉽게 관측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참(charm)쿼크라는 양성자ㆍ중성자 속의 소립자를 발견해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과학자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우주에서 암흑물질은 반(反)암흑물질과 충돌하면서 보통 전자(-전자)와 반(反)전자(+전자)를 만든 뒤 소멸한다. 반전자는 우주를 떠돌다 지구로 들어오면 전자와 충돌하면서 완전히 소멸한다. 그러므로 지구엔 반전자를 관측할 수 없지만 우주엔 많을 것이다. 그 반전자를 찾으면 암흑물질의 존재는 증명된다.”(※반물질과 물질의 충돌-소멸을 주제로 만든 영화가 ‘천사와 악마’다. 영화에선 반물질 폭탄으로 바티칸궁을 폭파하려 한다.)
에너지가 높은 반전자는 별의 폭발로 생기는 펄서(pulsar)에서도 나올 수 있지만 학계는 암흑물질과 반암흑물질의 충돌-소멸에서 나오는 것이란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팅 교수는 그 논리를 증명해줄 자석을 이용한 +, - 전자 식별법도 고안했다. +전자와 -전자는 전하가 달라 자석의 자기장 앞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휘어진다. 자장의 방향을 기준으로 +전자는 오른쪽, -전자는 왼쪽으로 굽는다. 그래서 우주에 자석을 갖다 놓을 수 있다면 반물질인 +전자를 찾아내는 게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AMS가 궤도로 오르면 우주 입자를 연간 16조(兆) 개 탐색, 이 가운데 반전자를 발견해 낼 확률을 높인다. 그런데 전자의 방향을 휘게 만들 만큼의 강력한 자장을 만들려면 대형 자석(AMS)이 필요하다.

팅 교수, 91년부터 2조원 모금 직접 뛰어
이 장치의 설계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만 이를 제작해 우주 궤도로 올려보내는 데 필요한 약 2조원이 문제였다. 그는 1991년부터 직접 모금에 뛰어들어 세계를 돌아다녔다. 한국에도 96년에 왔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CERN도 설득했다. 마침내 16개국에서 이에 동참하면서 2011년 5월 드디어 AMS는 지구 궤도로 올라갔다. AMS는 이후 16조 개가 넘는 우주 입자를 검색해 암흑물질의 존재를 증명하는 40만 개의 반전자를 찾아냈다. CERN도 강입자충돌기를 이용해 암흑물질을 찾고 있지만 AMS가 한발 빨랐던 것이다. NASA의 찰스 보던 국장은 “이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꿀 수 있는 첫 발견”이라고 말했다.
보통 세상에선 95% 정도 확실하면 이를 받아들이지만 과학계에서는 확률 오차가 ‘10만분의 1’ 정도가 될 때 믿기 시작한다. 팅 교수는 “앞으로 1년 안에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돼 확실한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주의 물질 중 90%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발견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며 우주 생성의 원리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다.



암흑에너지 연구의 역사는 암흑물질보다도 짧다. 우주의 팽창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40억 년 전쯤 팽창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면서 가속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암흑물질이 인력으로 우주의 물질을 잡아당기면 느려져야 할 텐데 설명이 안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모르는 에너지, 즉 암흑에너지(dark energy)가 이 팽창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탔다. 흥미로운 점은 가속팽창이 시작되던 40억 년 전에 우주에 생명체가 태어났고 지구도 탄생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연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