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보단 잡념으로 살아 더 행복하다’는 이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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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릴 적 얹혀살던 고모네 다락방은 주철환 대PD에게 ‘잡념’을 채우던 곳이었다. 다락방에서 채운 잡념을 그는 글과 음악으로 풀었다. [사진 중앙M&B]

“집념보단 잡념의 사나이로 살았어요. 그래서 더 행복합니다.”

 국어 교사, 프로듀서, 대학 교수, 사장….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주철환(58) JTBC 대PD는 30년 사회생활 원천이 ‘잡념’이라 했다. 한 자리에 말뚝을 박기보단 더 잘할 수 있고 행복한 일이 뭔지 끊임없이 고민했단다. 새로 낸 책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중앙M&B)에서도 그는 인생 잡념사를 주로 풀었다. 주철환 대PD를 1일 만났다.

 어릴 때 너무 많은 세상을 알게 되면서 잡념이 많아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와도 떨어져 살았던 그는 서울 돈암동 고모네서 컸다. “고모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는데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어요. 문맹이었고 학교도 나오지 않았죠. 저는 철저히 자율학습을 했습니다. 가게에 딸린 작은 다락방에서 가리지 않고 신문을 읽으며 세상을 알게 됐습니다.” 다락방은 그가 잡념을 채우는 장소였다. 신문·라디오를 보고 듣고, 가게 손님들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그림을 그렸으면 아마 그 모습들을 그렸을 것”이라 말했다.

 다락방에서 채운 잡념들을 ‘보기’ 위해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거리로 나섰다. ‘맨발의 청춘’ ‘떠날 때는 말 없이’ 같은 영화 포스터를 오려놓고 혼자 줄거리를 상상하다 참지 못하고 돈암동 동도극장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모르는 사람에 살짝 섞여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를 봤다. 주 대PD는 “사람들과 세상살이가 보고 싶어 근처에 있던 전차 종점에 혼자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대고 싶은 현시욕구가 있었는지 글을 쓰기 시작했고 풍문여고 주최 초등학생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뒤에도 그는 한 우물을 파지 않았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2년 넘게 국어 교사를 하다 방송국 PD로 전직했다. PD 생활을 하면서는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었다. 가수 신형원의 ‘개똥벌레’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한 ‘개똥벌레의 세계인식’이 계기가 돼 일간지에 노랫말을 해석하는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꿈동산’ 주제곡도 작곡해 썼다. 그는 “그때만 해도 글쓰는 PD가 귀해 주목을 받았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유명해지고 싶었다”고 했다.

 올해로 대학졸업 40년. PD경력 30년째를 맞는 주 대PD의 관심사는 ‘커리어 코치’라고 한다. 학교에는 생활지도교사가 있지만 직장에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집념으로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잡념으로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미리 선택지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황하는 사람이 내 얘길 듣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 대PD의 신간 출판기념회는 12일 오후 3시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1층 북카페에서 열린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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