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육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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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확하게 시간은 22일 하오 6시 14분. 『우리들 멋대로』라는 「디스크·자키」「프로」를 흘리고 있던 서울의 민간 방송 「동양 라디오」는 별안간 정규 방송을 중단, 북괴 기자 한명이 판문점에서 극적 탈출에 성공했다는 임시「뉴스」 제1보를 전했다.
이어서 6시 35분, 동 방송은 이 행운의 탈출자의 성명·신분과 자세한 탈출 경위를 신나게 방송하고 있었다. 국내의 각 신문·통신이 부랴부랴 속보를 써다 붙인다, 호외를 낸다 하는 등 법석을 피우기보다 한 시간이 앞서 있었고, 같은 전파「미디어」인 타 방송국들이 이 감격적인 「뉴스」를 전하기 보다도 무려 16분 내지 35분을 앞서고 있었다.
촌각을 다루는 보도 경쟁에 있어 「동양 라디오」가 이처럼 16분 내지 수십 분의 간격을 앞질러, 그 극적 「뉴스」 의 제보를 전할수 있었던 것은 이날 마침 판문점에 취재차 나가 있던 있던 동방송 김집 기자의 예민한 육감과 민첩한 활동의 성과였음이 밝혀졌다.
이날 항례와 같이 군사정전위 제2백 42차 본회의에 취재차 출장 갔던 국내외기자는 모두 40여명. 그러나 김 기자를 제외한 나머지 39명은 이날 본회의가 끝나기 휠씬 전인 하오 4시5분께 「유엔」군측 담당장교의 이례적인 권유에 따라 모두 서울로 철수하고 난 뒤였다.
근 10년 가까이나 취재 차 이곳에 다녔지만 회의도 파하기전에 「유엔」 군 당직장교로부터 중도퇴장의 권유를 받은 일은 한번도 없었기에 무엇인가 중대한 뉴스가 있지나 않을까 하여 홀로 남았다가 이 행운의 특종 기사를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이 김 기자 였다.
우리나라에 「퓰리처」상 제도같은 시상제도라도 있다면 틀림없이 그는 수훈갑의 특종상감 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이것은 결코 김 기자 개인의 행운 이라기 보다는 국내 전언론인의 명예요, 또한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실로 자유에의 길은 멀고도 가까운 곳에 있다. 용기와 기지로써 스스로 자유를 전취한 북괴 언론인 이수근 씨의 경우도 실은 그가 김 기자와 같이 오직 진실만을 과감 신속하게 보도하기 위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활약하고 있는 자유언론인에 의해 가장 깊은 감화와 용기를 찾게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제는 한국언론인, 아니 전 자유언론이 개가를 올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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