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사과하면 민정수석· 비서실장 경질 요구할까 봐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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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17초 사과문’을 발표하기로 내부적으로 가닥을 잡은 건 지난달 29일 정오쯤이다. 오전만 해도 윤창중 대변인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인사와 관련된)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의 언급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인사시스템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고 있지만 결정이 돼야 말할 수 있다”고만 했다. 이때만 해도 “비서실장 등이 사과한다면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게 된다. 누가 사과하거나 유감을 표시하거나 할 계획은 없다”(청와대 핵심 관계자 A씨)는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점심 때쯤 허태열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사과문 발표로 가닥이 잡혔다는 게 청와대 쪽 설명이다. 허 실장이 29일 오후쯤 비서실 관계자들에게 “인사가 대부분 마무리됐으니 사과 관련 얘기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 B씨는 “29일 오후에 상황 변화가 있었고, 이에 따라 그러한 입장 표명이 나온 걸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는 누가, 언제, 어떤 형식으로 발표할 것이냐로 좁혀졌다. 관련자들 사이에 이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새 정부 들어 청와대는 인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을 겸임하도록 공식화했다. 그러나 총리 후보자 및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등 무려 12건에 달하는 ‘인사(人事)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 만큼 비서실장과 함께 인사 검증을 책임지는 민정라인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국 허 실장 명의의 짧은 사과문을 김행 대변인이 대독하게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B씨는 31일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거나 대통령 명의의 사과문이 나갈 경우 야당에서 민정수석과 인사위원장(비서실장)을 경질하라고 요구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꼴이 돼 상황을 더 꼬이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비서실장이 직접 발표할 경우 대통령에 대한 책임 공방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덧붙였다. 책임소재를 비서실장 선으로 제한해 대통령에게로 불똥이 튀는 걸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17초짜리 사과문은 당·정·청 워크숍이 열리기 직전인 30일 오전에 발표됐다. 새누리당 내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포석이었다. 청와대 관계자 C씨는 “워크숍 직전에 사과를 해서 당의 불만 목소리 수위가 그나마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17초짜리 사과문이 나오기까지 청와대 참모들이 보여준 일련의 행태에 대해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은 격분했다. 친박근혜계인 김재원 의원은 “비서진들이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며 “왜 대통령이 화살을 맞아야 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다른 친박계 인사는 “참모들이 대통령을 위해 헌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통령 뒤에 숨을 궁리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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