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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 유로존 … 가입 발 빼려는 폴란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유로화가 찬밥 신세다. 그동안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가입에 목을 매던 폴란드 정부도 등을 돌려버렸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최근 회견에서 유로존 가입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 62%가 가입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들고 나온 것은 사실상 가입 시도를 미루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도우파 시민강령당 주도의 연정을 이끌고 있는 투스크 총리의 기존 입장과는 정반대되는 결정이다. 2007년 재집권한 이후 그는 폴란드가 유로존 가입에 실패하면 유럽의 주변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투스크는 민족주의 성향의 보수 야당 ‘법과 정의당’이 요구해왔던 국민투표 실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3년 통과된 유럽연합(EU) 가입 찬반 국민투표 안에 유로존 자동 가입 조항(전제조건 충족 시)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투스크 총리의 입장 변화는 2015년 총선을 앞두고 인기 없는 정책에서 손을 떼기 위한 수순으로 분석된다. ING 뱅크 슬라스키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라팔 베네키는 “국민 지지 부족으로 유로존 가입을 미래로 미룬 것처럼 보인다”며 “키프로스 사태로 더욱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인구 3800만 명으로 EU에 가입한 옛 동구 공산권 중 최대 국가인 폴란드는 즈워티화의 평가절하에 힘입어 유럽 경제위기 와중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왔다. 유로화를 도입해 경쟁력이 약화된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등이 지난 4년 동안 구제금융에 의존해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부 폴란드 언론은 투스크 총리의 발언이 EU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협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즈워티화만이 유일한 폴란드 통화라고 지정한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서는 유로화 도입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개헌에는 의회 3분의 2 이상 지지가 필요하다. 투스크 총리의 연정은 가까스로 과반 의석을 유지하고 있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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