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실명 위기 딸아! 아빠를 보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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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 2003년 경비행기를 조종할 때의 제라드 고슨스(왼쪽)와 그의 안내견 서미트.

그는 다음달로 예정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반을 앞두고 유언장을 썼다. 자신이 하던 일도 깔끔히 정리해 누구든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에베레스트에서 못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동료가 5년 전 그곳에서 숨진 일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다. 그런데도 그는 가겠다고 한다. 딸 아이에게 꿈을 갖고 있으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호주의 시각장애인 제라드 고슨스(35)다. 퀸즐랜드 주의 '왕립 시각장애인 재단'의 부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홍채가 없는데다 녹내장까지 겹쳤다. 그의 딸 테일러(7)도 같은 증상으로 현재 시력의 4%만 남은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결정이 "이기적인 게 아니냐"는 비판에 부인(40)은 "내 남편은 시력을 잃어가는 딸을 둔 아버지다. 아마 산에서 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가르치려 한 메시지를 딸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옹호했다.

고슨스 혼자서 가는 건 아니다. 여러차례 에베레스트 완등 경험이 있는 미국.뉴질랜드 산악인 11명이 함께 한다.

고슨스 자신은 2003년 에베레스트를 6000m 정도까지 오른 경험이 있다.

사실 그는 이전부터 시각장애인 모험가로 명성이 높았다. 자선 모금 행사 차원에서 1989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2000㎞씩 달리기를 했다. 1996.2000년 장애인 올림픽 때는 호주 국가대표(장거리 육상선수)로 출전했다. 2003년에는 부조종사로서 경비행기를 몰기도 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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