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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비밀경호국 148년 만에 사상 첫 여성 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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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줄리아 피어슨

1988년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아버지 부시)이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놀이공원을 방문했을 때다. 비밀경호국 소속 신출내기 요원인 한 여성이 디즈니 캐릭터의 탈을 쓰고 대통령 근접 경호를 맡았다.

 25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 여성이 148년 역사를 지닌 미국 비밀경호국(SS·Secret Service)의 수장이 됐다. 한국의 대통령 경호실에 해당하는 비밀경호국은 미 대통령의 경호를 담당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줄리아 A 피어슨(53) 비밀경호국 현 국장 비서실장을 신임 국장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비밀경호국 국장은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치지 않는 자리인 만큼 대통령의 임명만으로 임기가 시작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피어슨 국장은 비밀경호국에서만 30년 근무하면서 경호원으로서의 헌신과 기백의 본보기가 됐다”며 “나를 포함한 ‘퍼스트 패밀리(대통령과 그 가족)’의 경호를 피어슨 국장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미 비밀경호국 역사상 여성이 국장을 맡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타임스는 “선글라스를 쓰고 이어폰을 낀 채 대통령을 경호해 온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타일의 남성이 지배해 온 비밀경호국 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고 보도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인 2006년 5월부터 7년 가까이 비밀경호국장을 맡아온 마크 설리번 국장은 지난 2월 말 퇴임했다.

 여성 비밀경호국장 시대는 공교롭게도 1년 전 터진 콜롬비아 성추문 사건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4월 오바마 대통령의 경호를 담당한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콜롬비아 북부 해안의 리조트인 카르타헤나에서 호텔방으로 매춘여성을 불러들여 성매매를 했다가 적발됐다. 추가 조사에서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엘살바도르 등지에서도 성매매를 한 의혹이 불거졌다.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고, 사건의 여파는 의회 청문회로까지 번졌다. 당시 연루된 요원 13명 중 8명이 해임됐다. 설리번 국장이 사임한 것도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는 형식이었다. 비밀경호국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에 오바마 대통령은 사상 최초의 여성 비밀경호국장이란 카드로 응답한 셈이다.

 1865년 위조지폐 단속을 위해 창설된 SS는 190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된 뒤 의회의 결정으로 미 대통령 경호기관으로 탈바꿈했다. 비밀경호국의 연간 예산은 15억 달러(약 1조6600억원). 소속 인원도 순수 요원 3500명에 군 지원인력까지 합쳐 4900명에 달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비밀경호국의 명예를 더럽힌 성매매 스캔들로 인해 마초(macho) 문화가 지배해 온 비밀경호국에 새 시대가 열렸다”고 전했다.

 여성인 피어슨 국장의 임명을 놓고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비밀경호국 관계자는 “피어슨 국장은 입사 초기 몇 년을 빼고는 예산·인사 등 행정업무만 담당해 왔다”며 “현장을 잘 모르는 책상물림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랠프 바샴 전 국장은 “그런 시각은 편협하고 부적절한 것”이라며 “피어슨 국장은 부국장보와 비서실장 등을 두루 거친 베테랑”이라고 옹호했다.

 피어슨 국장은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에서 형사정책을 전공했다. 졸업 후 올랜도 경찰국에서 3년간 경찰 공무원으로 지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인 1983년 비밀경호국 요원이 됐다. 현장 경호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88~92년 담당했다. 그 뒤에는 인적자원국장, 훈련국장 등 행정업무를 맡아 왔다. 피어슨 국장의 결혼여부·자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미 백악관이 관례대로 가족관계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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