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자주 하면 나랏빚 늘어 … 전쟁·자연재해·경기침체 때만 가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0면

앞에서 언급했듯 추경예산엔 재정적자라는 부작용이 따라옵니다. 추경을 하려면 재원조달이 필요합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국채를 발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채를 마구 찍어내다간 최악의 경우 나라살림이 거덜 나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추경의 요건은 법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가재정법 제89조(추가경정예산안의 편성)에는 추경의 요건을 크게 세 가지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대량실업·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한 경우입니다. 위의 사항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게 돼 이미 확정된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기획재정부 장관인 박재완 장관은 국회와 정치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재임 기간인 2011년 6월 이후 한 차례도 추경을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박 장관은 올 초 기자와의 신년 간담회에서는 “2013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국채 추가 발행만큼은 끝까지 막았다.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재정이 한번 흔들리면 나라 경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추경을 하지 않는다고 국가가 쓸 돈을 전혀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지난해 추경 대신 각종 기금을 증액하고, 공공기관 투자를 늘려 4조원을 추가로 마련했습니다. 또 예산의 이월·불용을 최소화해 4조5000억원을 더 썼습니다. 이를 모두 합치면 8조5000억원으로, 과거 추경 규모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일종의 편법 추경인 셈이지만, 국가부채로 잡히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국채 발행 등을 통한 추경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추경을 해서 경기를 살릴 수 있느냐, 아니면 국가재정만 악화되느냐는 쉽게 단언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최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