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시장의 73%가 이제 ‘한국산 ’

중앙일보

입력

삼성경제연구소 선정 10대 일등상품 LNG선…99년 세계시장 1위 차지한 조선업체 매출구조 바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종 지난해 한국 조선업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실제로 이같은 재미있는 현상이 일부 벌어지기도 했었다는 후문이다. LNG(액화석유가스)선 발주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외국 유명 선사 선주들의 ‘발주 코스’가 유별났다는 얘기다. 이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조선강국으로 이름난 일본의 조선소가 아닌 한국 대우조선의 거제조선소다.

‘LNG선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확보된 일감이 많아서 지금 당장은 안 된다‘는 대우조선측 대답을 들으면, 이들은 즉각 삼성중공업으로 달려간다. 거기서도 ‘일감이 넘쳐서 안 된다’고 하면, 이들은 자연스레 발길을 현대중공업으로 돌린다. 거기서도 ‘안 된다’면, 이들은 그제서야 일본으로 가서 LNG선 발주를 한다는 게 얘기의 주 내용이다.

한국이 세계 LNG선 신조선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LNG선 신조선 시장만 놓고 보면 일본은 이젠 한국의 ‘게임상대’조차 되질 않는다. 한국의 수주실적이 일본을 월등히 앞서고 있어서다. 한국은 이제 전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LNG선 강국이다. LNG선이 한국의 대표적인 일등상품, 수출효자상품으로 등극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먼저 세계 LNG선 시장 규모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대우조선이 수주한 LNG선은 10척·현대중공업이 6척·삼성중공업이 5척이다. 총 21척. 이는 전 세계시장 규모의 50% 선이다. 대우조선 하나만 따져도 세계시장의 약 25%를 차지했다는 단순 계산이 가능하다. 돈으로 따져도 결코 작지 않다. 13만8천㎥급 LNG선 척당 선가는 1억7천만 달러(약 2천2백10억원). 21척이면 약 4조6천4백10억원이나 된다.

한국의 LNG선 수주 실적은, 전통적인 조선강국이라며 자랑하던 일본의 미쓰비시·미쓰이·가와사키 조선소의 위용을 단번에 납작하게 눌러버린 쾌거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앞으로 2010년까지 1백여척의 LNG선이 잇달아 발주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시장의 50% 이상을 한국이 차지하는 시장구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LNG선 총 수주잔량을 봐도 한국의 우위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7월 기준으로 한국의 수주잔량은 옵션 14척을 빼고서도 34척. 일본 19척을 크게 앞선다. 옵션을 포함하면 일본의 2배가 넘는다.

한국은 사실 99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조선국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70년대 초 본격적으로 시장에 참여한 이후 30여년 만에 이룩한 대역사인 것이다. 특히 2000년에는 2천만GT가 넘는 사상 최대의 수주실적을 기록하면서 세계 1위 조선국의 지위를 확고하게 구축하였다. 가동할 수 있는 도크의 여유가 없을 만큼 풍부한 물량을 확보한 국내 업계는 이후 고부가가치선 위주의 선별수주 전략을 취했으며, 이 전략의 대표 선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LNG선이다.

대우조선은 LNG선 수주가 최근 2년 새에 급격히 늘면서, 장기적으로는 회사 매출구조가 고부가가치선 위주로 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조선은 2000년에 수주한 6척의 LNG선을 포함해서 현재 총 16척의 LNG선 수주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조선업체 중에서 가장 많은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은 이 LNG선이 본격적으로 건조·인도되는 내년에는 LNG선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선박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우조선은 올해에도 지난해 수주실적을 대략적으로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9·11 미국 테러와 연관된 세계적인 경기침체 때문에 LNG선 발주가 줄어든다는 예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LNG선의 경우 자체 가격경쟁력 및 기술경쟁력을 갖고 있기에, LNG 수주실적은 다른 선종에 비해서는 그래도 ‘선방’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지난해 특히 영국 브리티시가스그룹(BGG)에서 LNG선 2척을 수주한 게 눈길을 끈다. 총 수주 실적은 5척.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수주한 전체 18척의 선박 중 LNG선이 5척이나 되어,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의 선별수주 전략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자평을 한다.

삼성은 올해도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LNG선을 수주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연초부터 발빠르게 뛰고 있다. 삼성은 올해 전세계 LNG선 발주가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지만, 9·11 테러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올 하반기 이후에는 세계시장에서 연간 10∼15척의 발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은 99년 이후 매년 15척 정도의 LNG선이 발주될 것으로 보고 수주전략을 짜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LNG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갑자기 2000, 2001년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무려 40척 가까운 LNG선이 발주되면서 재빠르게 수주전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었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현대중공업은 유럽계 선사인 골라사로부터 2척을 수주했다. 지난해 총 수주실적은 6척. 현대중공업이 만드는 LNG선은, 대우나 삼성의 맴브레인형과 다른 모스형이다. 모스형은 공모양의 LNG 탱크가 배 안에 탑재된 게 특징이다. 멤브레인형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LNG 탱크가 탑재되어 있다.

조선업계는 LNG선 신조선시장이 정기적으로는 밝지만, 현재 악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는 진단을 내린다.

가장 큰 악재는 미국의 경기침체와 이와 연관된 세계경제 침체다. 산업생산이 둔화되면 가스수요가 줄고, 그러면 LNG를 운반하는 배에 대한 수요도 줄기 마련이다. 히팅 오일 같은 LNG 대체 에너지를 활발하게 사용한다거나, 갑자기 겨울날씨가 따뜻해진다거나 하는 계절적 요인도 악재다. 실제로 9·11테러 사태로 말미암아 LNG 신조선 시장이 전체적으로 급랭했었다. 이상난동으로 초겨울 날씨가 예상보다 따뜻해져 LNG 성수기가 실종되면서 LNG시장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된 적도 있다.

하지만 대세는 긍정적이다. LNG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LNG선 수요도 늘 것이란 얘기다. 90년대 중반 이후 전세계적으로 환경친화적 에너지인 LNG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중국·인도 같은 후발국가들의 경우 경제성장에 따라 LNG에 대한 수요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LNG선 시장도 예전의 정기노선 중심에서 단기용선 중심으로 바뀌고, 그 덕분에 LNG선 수요도 더불어 증가하고 있다. 최근 일본·한국·대만 가스업체들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데, 이것도 결국 LNG선 수요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이 LNG선을 호령하게 된 이유는 여럿 있는데(박스기사 참조), 특히 기술적인 면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같은 기술력은 이제 일본도 못 따라올 정도라고 조선업계는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대우조선의 경우 지금까지 외국기업으로부터 수입해 오던 LNG선 통합자동화시스템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척당 1백억원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독자 설계 기술력 확보와 뛰어난 품질로 대우조선이 건조한 메블레인형 LNG선이 세계 LNG선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하고 있는 멤브레인 마크-Ⅲ 타입 LNG선은 LNG선 중 가장 최근에 개발된 선종으로서 LNG 저장탱크 내부에 폴리우레탄으로 된 단열 판넬을 접착한 후 다시 그 위에 얇은 스테인레스 강판을 접합하는 방법이다. 운항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하고 있는 모스형의 경우 안전성 면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LNG선 품질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내 조선업체들은, 80년대 말부터 기술개발과 자재부품 국산화에 주력하면서 국산화율을 높여왔다. 덕분에 우수한 품질의 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었고, 10년 이상씩 조선업체에 근무한 5천여명의 대졸자 베테랑 엔지니어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같은 요인을 바탕 삼아 국내 조선업체들은 고부가·고기술 선박인 LNG선을 ‘품질은 뛰어나게, 값은 싸게’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