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잇딴 성추문에 보통 주부들이 좌불안석,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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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봄 부추 좋다고 살 생각일랑 말어.” 뜬금없는 선배의 말에 “요즘 부추에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선배는 웃으며 “아들 있는 집 친구들에게 하는 농담”이라고 했다. 박시후 사건에다 미국의 전도양양했던 10대 미식축구 선수들이 성폭행으로 소년원에 갔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원래 경상도에선 부추를 정구지라고 하는데, 이는 ‘정력을 오래 유지시키는 채소’라는 뜻이란다. 그러니 혈기왕성한 아들들 단속하려면 ‘힘 나는 음식’은 아예 안 먹이는 게 상책이라는 거다.

 한 엄마는 대학생 아들을 이렇게 교육한단다. “여자 손을 잡을 땐 반드시 물어보고 동의를 받아라. 손을 잡았다고 팔짱을 껴도 좋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어제 승낙받았다고 오늘은 안 물어봐도 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매 단계 묻고 허락을 받은 뒤에 행동해라.” 그러자 아들이 묻더란다. “휴대전화에다 녹음도 해둘까요?”

 요즘 연일 터져 나오는 성추행·성폭행 사건에 아들 둔 엄마들도 ‘멘붕’이다. 잘 키운 아들이 손과 입 하나 잘못 놀려 신세 망칠까 봐. 그래서 아들 교육은 아빠에게 맡기지 않는단다. 요즘 남자들의 치명적 결함은 남성으로 태어난 죄인지라 아빠를 본받으라고 했다가는 오히려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아들이 여성혐오증이라도 걸려 장가 안 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이래저래 아들 걱정도 태산인데,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까지 터지니 이젠 ‘남편’ 때문에 가슴이 덜컹 한다.

 최근 몇 명의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었는데, 이 자리에서 ‘성접대 동영상’ 얘기를 하다 말고 몇 명이 나를 보며 힐난했다. “언론사는 뭘 그렇게 캐고 다니며 자세히 싣느냐”는 거다. 거론되는 면면이 기업가와 검경 고위층 등 사회 지도층이고, 이런 분들이 영화 ‘아이즈 와이드 샷’을 재현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들의 윤리의식과 사회 부조리를 한탄하는 게 상식적인 거다. 그런데 이 자리의 부인들에겐 이런 객관적 정의감을 표현하는 것마저 찜찜한 부분이 있었나 보다. 누군가 말했다. 남편·아들 있는 입장에선 이런 일이 벌어져도 남의 일이라고 한껏 비난하기엔 뒷목이 당긴다고. 인격적으론 믿는 아들·남편도 그 ‘수컷 본능’만은 믿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렇단다. 한 부인이 말했다. “옛날엔 꽃뱀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젠 휴대전화 카메라를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남편과 자식 일엔 괴력을 발휘하는 대한민국 아줌마들도 ‘수컷 본능’엔 뾰족한 대책이 없다. 겨우 생각할 수 있는 일이 힘 빼는 음식 해 먹일 궁리 정도다. 이렇게 남의 집 남자들 성추문에도 집에 있는 보통 엄마와 아내의 한숨이 깊다. 정말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한다.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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