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 선심 - 윤기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총선을 향한 길목엔 벌써 성급한 계절풍이 일기 시작했다. 선거 때면 으례 「돈」 기류를 타고 한번씩 불어 닥쳤다가 사라지는 선심 바람 - 물품 살포의 득표열은 은밀히 유권자들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한 표를 얻기 위해 고무신을 사주고 양말 몇 켤레를 받는 등 선심바람이 부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굳어져가고 있는 것이 우리 선거풍토다. 선거 때가 되면 밀가루 배급이니 뭐니하는 선물이 밀려 닥친다는 것이 선거구민들의 성급한 연말연시의 화젯거리로 오르는 것을 보니 선거도 이제 그 「무드」가 일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흰눈이 깔려 얼어붙은 조용한 농촌(전남 광산군 운암리)에 지난 연말 3명의 청년들이 30여 가구를 방문하며 흰 종이로 싼 필통만한 상자를 돌려주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광주시 변두리서도 볼 수 있었다. 그 상자는 공천을 받을는지도 알 수 없는 입후보 지원자의 이른바 새해 인사치레로 돌린 은수저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라이벌」인 상대방 입후보 지망자의 집에까지 들어가 말썽이 되기까지 했다. 돈이 있는 대로 적든 많든 선거를 치르기 위해선 안 할 수 없는 입후보 지망자들의 당면한 의무(?)라는 것을 여·야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일부정치인들이 선거에 대비한 선심공작을 위해 최근 2∼3개월 동안 쓴 돈 액수는 최고 3백여만원에서 최저 20여만으로 잡는 것이 보통이었다. 충남에서 현재까지 자금을 많이 썼다는 지구를 들어보면 파월 가족, 군경 유족, 상이 용사, 지게꾼 등 영세민 1천6백여명에게 홑이불용 「타월」 1장씩(78만윈) 의용 소방대원 정복(2백만원) 마을문고 5O여개소 설치(30여만원)등 모두 3백여만원이라고. 그런가하면 강원도의 어떤 현직 의원은 한 장에 4원씩 들여 만든 「캘린더」 6만장과 연하장까지 합쳐 근30만원 안팎이었다는 이야기다.
「캘린더」와 연하장은 이미 낡은 수법일 뿐 아니라 유권자 자신들이 당연히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있어 별 효과가 없을 공산이 크나 그러나 남들이 하니 아니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의 낭비적인 고민이기도 했다.
○따라서 선심공세의 양상도 자연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 충남의 어떤 군에서는 군내 3만가구에 김장 소금 반 가마씩을 비롯해 극장 입장권 배부, 결혼식장 무료사용 등을 내세우고 있고 모 의원은 자기 이름을 새긴 각종 식기 대야 손수레에서부터 「불도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소·돼지 2백여 마리 등 거의「연중무휴」로 선심작업을 펴고있는 형편.
또 전북의 어떤 중진급 의원은 지난 연말 2백여명의 유지들을 경인공업지대, 판문점 시찰 등 유람여행을 시키는 등 새 구상도 발휘됐고 경·남북에서는 자기 경영 또는 방계 기업체에 대해 백명 내외의 취직 알선까지 하는 기업을 가진 현직 의원의 실력도 자랑하고 있다.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이런 유형의 갖가지 선심행위가 유권자의 투표행위 결정에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는 어느 선거서나 마찬가지로 아직 어떤 판단기준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유권자들 중 25.2% 내지 28.1%가 「정치에 대한 불신」을 보이고 있다는 66년의 어떤 여론조사 통계도 있지만 선거를 치르는 모든 정치과정에서의 매수 등 변칙적 사태는 정치불신 또는 신임층을 제외한 문맹자등 비교육 유권자 30%에서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더구나 호남지방의 목포·광주·화순·보성·광양 등에서 만난 10여명의 유권자들의 말이 「물건을 받아쓰고도 투표할 때는 마음에 있는 사람을 찍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선심의 효과는 한국의 선거에서는 차츰 약해가는 일면을 말하는 반응인 것도 같다.
○…선심을 돌리는 모당 소속 출마 예상자들과 일부 재야정치인들도『날짜가 갈수록 경쟁의식이 커지고 초조해지기 때문에 우선 돌리고 보는 것이지 실제 선심을 통한 득표는 전체의 약15%나 될까?』면서 『그렇지만 가장 확실히 득표를 산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므로 「퍼센티지」는 적지만 무리하게 선심을 쓴다는 것이 그들의 고충이자 수단이기도 했다.
어떻든 어떤 방편보다도 선심이 득표에 대한 확률이 있다는 기본적 선거운동이 현실이고 보면 위법을 염려할 경황없이 여·야가 자기 수단껏 행사할 것이 이번 선거에서도 불가피하게 예상된다. 따라서 이런 운동방법이 거의·효능을 거두지 못하게되는 선거분위기가 조속히 마련되어야겠다는 것이 뜻 있는 사람들의 염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