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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심리학에 길을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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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여자농구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심리 상담을 권유해 우승이라는 결실을 봤다. 사진은 위 감독이 지난해 11월 KDB생명과의 경기에서 작전 지시를 하는 모습. [정시종 기자]

프로 스포츠에 심리학 강좌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야구·축구·농구 등 프로구단들이 체력과 기술 못지않게 심리적 측면을 강조했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면서다.

 신예 선수들이 주축인 여자농구 춘천 우리은행은 2012~2013시즌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지난 4시즌 동안 꼴찌였고 5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우리은행은 패기를 앞세워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베테랑이 많은 삼성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적잖게 긴장했다.

 큰 경기를 앞두고 어린 선수들이 불안해하는 걸 느낀 위성우(42) 우리은행 감독은 “지금 우리에게 훈련보다 중요한 건 심리 상담”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선수들은 챔프전을 앞두고 3주 동안 5, 6번씩 심리 연구소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 효과는 탁월했다. 우리은행 주장 임영희(33)는 “첫 경기 때 꽤 긴장이 될 줄 알았는데 어린 선수들도 전혀 떨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은행은 3전 전승으로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도 심리학 강의 덕분에 FC 서울을 5년 만에 이겼다. 지난 시즌까지 부산을 이끈 안익수 감독은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체력과 기술, 전술 훈련 위주였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윤성효 감독의 색깔은 ‘자율축구’다. 부산 선수들에겐 커다란 변화였다. 올 시즌 개막 후 1무1패.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혹평까지 이어졌다.

 윤 감독은 청소년 대표팀 심리코치인 강성구 박사를 초빙했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해서 책임 있게 훈련하고 경기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부산은 지난 17일 홈경기에서 FC 서울을 1-0으로 꺾었다. 강 박사는 “응집력을 끌어내기 위해 FC 서울 경기를 이기자는 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몰입하도록 했다”고 귀띔했다.

 체육과학연구원 구해모 박사는 “단체종목 선수들은 체력과 기술 향상에만 집중한 나머지 개인기량만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팀의 공동 목표를 세우고 각자 포지션에 맞는 정신 무장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강성구 박사도 “팀에서 한두 명만 나태해지면 곧장 경기력 저하로 이어진다. 전원이 한마음이 돼야 최강의 전력이 구축된다”며 “현대 스포츠의 경기력은 평준화돼 있다. 진짜 승부는 정신력에서 갈린다”고 강조했다.

 프로야구 삼성·LG 등은 10여 년 전부터 심리 상담을 했다. 단체 구기 종목에서 야구가 멘털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하기 때문이다. NC의 외국인 투수 아담 윌크(27)는 미국 롱비치대에서 범죄심리학을 전공했다. ‘마운드의 심리학자’라면 자신의 멘털을 관리하고 상대 타자와 수싸움을 하는 데 당연히 유리하다.

 2009년부터 4년간 세 차례 꼴찌에 머문 한화는 아예 전담 심리코치로 이건영 심리학 박사를 영입했다. 아직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박사는 “선수들이 심리 상담을 받는 것을 아직 어색해한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라며 “감독과 코칭스태프, 고참들이 나서 심리 상담을 주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박소영 기자
사진=정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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