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긴급조치 위헌, 역사적 과오 바로잡기 계속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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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긴조) 1, 2, 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한 것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뜻깊은 일이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지금 비록 사라졌지만, 1970년대 지배권력이 법을 구부려 국민의 주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 통치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오래 기억해야 할 뼈아픈 역사다.

 긴조 1호는 유신헌법 비방과 유언비어 날조·유포를 금지하고, 긴조 2호는 긴조 위반 사건을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하라는 내용이다. 헌재는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국가긴급권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비상사태에만 행사할 수 있고 국가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보호를 위한 일시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75년 내려진 긴조 9호는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이를 보도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긴조 9호 발표 직후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등 대중문화 탄압 강도가 높아져 국가 안보라는 미명하에 문화적 표현의 자유까지 과도하게 억압했던 사례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통일된 국민 의사는 전체주의에서 상정하는 것이며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조치들은 죄형법정주의 등 우리의 헌법정신을 위반한다는 점도 명백히 했다.

 역사의 과오는 언제든 반복될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고, 기억하고, 반성하고, 각성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새 정부 인사청문회에선 5·16을 군사 쿠데타라고 인정한 사람이 정홍원 총리와 남재춘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정도였다. 다른 장관 후보자들은 교묘하게 답변을 회피했다. 이에 고위층의 역사인식 부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법을 독재 통치수단으로 전락시켰던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고 반성하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