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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주인공을 찾아서(4)|한국으로 귀하한 미국인 길노연 신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호남으로 생긴 벽안의 길노연 신부는 또렷한 한국말로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합께 살아오면서 기장 가까운 외국인 친구로 생각해오던 한국사람을 영원한 동포로 삼게되었다는 것, 이것처럼 기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참으로 행복합니다』-길 신부는 행복하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지난 2월17일 미국인「케네드·E·길로런」의 신분을 버리고 우리 법무부에서 한국인 길노연으로서의 귀화수속을 모두 마쳤을 때 그는 『3년 동안 품어온 숙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면서 안면에 맑은 웃음을 띤 일이 있었다.
한국인 길노연 신부는 55년10월13일 「로마」교황청의 명을 받고 「예수회재단」에서 경영하는 학교를 맡아 육영사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온지 만11년만에 36년 동안 지녔던 미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됐던 것이다.
귀화한 뒤 동료들로부터 『한국의 어떤 점이 미국보다 더 좋더냐?』고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받았다면서 길 신부는 『그때마마 나는 동료들에게 당신도 한국으로 귀화하라고 권고했지요』- 조용히 웃었다.
길 신부는 경건한 표정으로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기쁨은 천주님만이 아실 것』이라고 했다. 미국 「위스콘신」주 「애폴톤」시에 있는 두 동생에게서 한국에 귀화하는데 대해 많은 반대를 받았다고 말하며 「백문이 부여일견」이라는 문자를 써가며 『너희들이 한국에 한번 와보면 나의 심정을 알게될 것』이라고 끝내 우겼더니 그후론 답장조차 없다고 길 신부는 약간 서운한 얼굴이었다.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좀… 『참으로 믿음직하고 좋은 친구입니다. 처음 이 땅을 밟았을 때는 6·25직후라 지친 듯한 눈동자였는데 요즘 「우리나라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들고 있습니다. 』 길 신부는 「우리나라사람」이란 말의 억양을 높였다.
길 신부는 한국의 사람·기후·풍경·음식 그리고 풍습 등 모든 것이 무조건 좋다고 했다. 『광주·무등산·목포·해남·소록도·흑산도 등 여러 곳을 가봤지만 다 좋은 곳입니다』- 한참 한국의 풍토를 자랑하고 나서 길 신부는 『이번 겨울 휴가에는 바닷가에 나가 어부들과 함께 지내렵니다. 지위의 고하나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우리나라사람」과 합께 지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고했다.
길 신부는 현재 1백30명의 학생이 있는 광주신학교의 학장으로 학생들과 함께 먹고 자고 공부를 함께하는 데에 커다란 삶의 보람을 느끼고있다고 말했다.
길 신부는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한국말을 일상어로 쓰고 있다. 그 만큼 그의 한국말은 능숙하며 낱말도 풍부하고 속어도 많이 알고있다.
「온돌에서 자며 식사도 한식을 하고있지만 아직도 모든 행동이 부자연합니다.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여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는 한국인이 되렵니다』- 길 신부는 동양식예법 특히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데 불편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파고다」담배 한 대만 주십시오.』권하는 담배를 피워 물고 『귀화전보다 살이 더 찐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칭찬만 하는데 한국의 풍습이나 국민성에 대해 불만이라도 없습니까? 『여러 곳을 다녀보았지만 지역적인 차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방색, 이거 절대 반대합니다. 또 시골에 가면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다. 빈부의 차가 많은 것, 이것도 반대합니다. 머리도 좋고 인간도 좋은데 너무 이기적입니다. 이것도 좋지 않습니다. 남녀노소의 차별이 심합니다. 젊은이들이 좋은 생각 가지고 있으면서도 웃사람의 눈치보느라 말하려하지 않습니다』- 줄줄 외듯 불만을 늘어놓을 땐 역시 서구인의 이지가 번득이며 인습적인 것과 불합리한 것을 싫어하는 현대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나를 이색적인 한국인으로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길 신부가 좋아하는 음식은 만두국·콩나물·동태찌개·김치라고 했다.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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