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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성인, 음욕 없애려 장미꽃밭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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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를 위해 고자(鼓子·eunuch)가 되라는 예수의 말이 마테오 복음 19장 12절에 나온다. 독실한 크리스천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구절이다. 강론이나 설교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뜨거운’ 주제다.(온 가족이 교회·성당에 다녀오는 길에 꼬마가 “아빠, 고자가 뭐야?”라고 묻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리스도교에서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중에서도 가톨릭 교회는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기관이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결혼을 포기하고 죽음을 불사하는 무수히 많은 성직자와 평신도가 있다. 교부 오리게네스(185께~254께)는 글자 그대로 실천해 스스로 거세했다. 프란치스코 성인(1182~1226)은 음욕을 없애려고 장미 꽃밭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우리나라 가톨릭의 103위 성인들은 예수를 배신할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우리 조정은 결코 무지몽매하지 않았기에 배교하면 살려준다고 했다.)

교황은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
가톨릭 교회를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나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바티칸은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dynasty)다. 바티칸의 쿠리아(curia)는 적어도 1500년간 발전해온, 서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관료 시스템이다. 가톨릭 교회는 세계 최대의 교육·자선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부분적으로 로마제국의 국가 체제를 계승했다. 근대 민족 국가들이 그 형성 과정에서 참조한 원천 모델 중 하나는 가톨릭 교회다.

다른 모든 국가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를 이끄는 교황은 내치와 외치에 힘써야 한다. 교황은 교회 내부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actor)로서 세계 평화에도 기여한다. 교황에게도 국제정치 어젠다가 있다. 세속의 대통령·총리들과 마찬가지로 교황은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며 ‘정치적’ 유산(legacy)을 남긴다.

세상의 리더들처럼 교황 중에는 나쁜 교황, 평범한 교황, 위대한 교황이 있었다. 위대한 교황들의 업적은 화려하다. 그들은 세계 정치사의 중심에 섰다. 레오 1세는 마치 우리나라의 서희(徐熙·942~998)처럼 외적의 침입을 외교 담판으로 막아냈다.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훈족의 왕 아틸라(406~453)를 설득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원조 또한 ‘하느님의 종들의 종’을 자처한 그레고리오 1세다. 신성로마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교황들이다.

인노첸시오 3세 시대(1198~1216)처럼 교황의 호소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고 군주들이 교황에게 조공을 바치던 시대가 있었다.(인노첸시오 3세는 프란치스코회 설립을 인가한 교황이기도 하다.) 한때 황제보다 막강했던 교황의 힘이 현대 세계에서는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도 있지만 반대 사례도 풍부하다.

1917년 ‘파티마의 성모’의 메시지 중 하나는 러시아의 회개였다. 스탈린은 1935년 “교황이 가진 사단은 몇 개나 되느냐?”며 코웃음 쳤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민주주의·자본주의 진영과 손잡고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일조했다. 총포와 미사일로 무장한 군대는 없으나 ‘기도의 힘’으로 무장한 군대는 있었다. 세계 회원 2000만, 우리나라에도 15만 회원이 있는 푸른군대(Blue Army·World Apostolate of Fatima)는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 기도 5단을 바쳤다.

신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내치·외치 업적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기억될까. 확정되다시피 한 과제들이 교황을 기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개혁 정도가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내적으로는 아무도 그 총 규모를 모르는 방대한 교회 재산을 정비하고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사제직을 개혁해야 한다. 여성의 사제직 진출, 사제의 결혼 허용 문제는 어쩌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난제다.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교회의 경우 많은 사제가 사실혼 관계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교회를 현대 세계로 안내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를 웃도는 새로운 공의회가 필요할지 모른다.

박 대통령도 예수회 교육기관서 공부
교회나 교황의 목표는 정치나 국제정치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신앙적·윤리적 행위가 국제사회 속에서 파장을 낳는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도하는 교회일치운동(ecumenism)이 세속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성서의 정신으로 보면 교회는 하나인 게 정상이다. 가톨릭 입장에서는, 우리의 남북통일 못지않게 절실한 게 교회의 일치다. 현재 가톨릭 교회는 다른 그리스도 교회들과 ‘평화공존’을 하고 있다. 특히 정교회·성공회·루터교회 등과 상대적으로 가깝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치 프로세스’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외치 분야에서 양대 과제는 바티칸이 이슬람·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특히 이슬람과 유대교는 가톨릭과 뿌리가 같은 ‘아브라함의 종교’로 이해되기 때문에 1차적인 ‘신앙 간 대화(interfaith dialogue)의 대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자 이슬람권에서는 일단 환영하며 ‘새 교황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요한 바오로 2세만큼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시대에 “바티칸-이스라엘 관계가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던 이스라엘은 새 교황이 어떤 성향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스라엘은 교황이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공동체와 좋은 관계였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

세계 180여 개 국가와 수교하고 있는 바티칸은 아직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한 관계 개선이 있었으나 바티칸에 충성하는 신자들은 아직도 지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중국 당국의 탄압을 받고 있다. 12억 가톨릭의 중심인 바티칸과 13억 중국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은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중국이 변했다는 것을 입증하며 서구를 안심시킬 카드다. 바티칸-중국 외교관계를 도구 삼아 남북한 관계 개선의 새로운 루트가 뚫릴 수도 있다.

모든 게 하기 나름이다. 역사에 불멸의 업적을 남긴 교황들은 리더십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다. 확실한 것은 교황이 동원할 있는 인적·물적 자원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정보력도 막강하다. 모든 벽에는 귀가 있는 것처럼 가톨릭 신자가 있다. 정보력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예수회 출신인 교황은 전 세계 예수회 네트워크, 특히 교육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예수회 교육기관은 신앙과 교육을 분리하지만 볼테르, 데카르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등 수많은 인물이 예수회 교육기관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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