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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끼리끼리 ‘친구 내각’→ 2차 정적 포용 ‘올 재팬 내각’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일본 부흥을 외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58) 총리의 기세가 무섭다. 지난해 12월 출범 당시 60% 중반이던 지지율이 요즘 70%를 넘나든다.

일본의 역대 내각들의 지지율은 시간이 갈수록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제1차 아베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도 그랬다. 출범 때 60% 후반이었지만 두 달 만에 50% 초반으로 추락했다. 제2차 아베 내각의 분발 때문인지 매년 총리가 바뀌며 국제적 망신을 샀던 일본 정가에선 “장기 정권이 가능하겠다”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온다.

아베의 선전을 두고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돈을 왕창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경제 정책, 즉 ‘아베노믹스’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엔 이론이 없다. 아베노믹스는 엔저 현상과 주가 상승을 불렀고, 경기 호전 기대감에 개인 소비도 살아날 조짐이다. 20년 장기 불황에 지쳐온 국민들은 열광하고 있다.

‘약체 야당’도 아베에게 독주의 길을 열어줬다. 민주당은 집권 3년3개월간 국정 혼란으로 신뢰를 잃었다. 일본유신회를 이끄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은 다크호스이지만 아직 애송이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가에선 아베 내각의 고공 행진 비결을 ‘재수(再修) 총리’인 아베의 달라진 내공과 용인술에서 찾으려는 이들이 많다. 아베가 2006년에 비해 훨씬 빼어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견해다. 아베의 한 측근은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아베는 ‘내가 다시 총리를 맡으면 이렇게 하겠다’는 내용을 일기 쓰듯 매일 노트에 정리해 왔다”고 말했다. 이른바 ‘뉴 아베 매뉴얼’이다.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가 15년의 감금 생활 동안 오로지 복수를 꿈꾸며 도상훈련을 했듯 아베도 5년 동안 재기의 칼을 갈아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아베의 움직임들은 정밀하게 만들어진 설계도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아베의 ‘경제 올인’ 정책 역시 과거의 쓰라린 교훈에서 비롯됐다. 그가 총리직을 던진 건 2007년 9월이었다. 취임한 지 꼭 1년, 건강 악화를 핑계로 댔지만 사실은 참의원 선거(7월) 참패가 결정타였다. 당시 아베는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대표 공약을 바꿨다. 취임 이후 줄곧 헌법 개정을 가장 중요시했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급한 국민들은 개헌에 관심이 없었다. 선거에 임박해서야 연금 문제를 전면에 꺼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자민당은 민주당에 어이없이 참패했다. 지금의 아베도 그때와 똑같이 올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아직도 개헌에 목숨을 걸고 있지만 이번엔 철저히 발톱을 숨긴다. 7월까진 경제를 살려놓고 그 뒤에 ‘필사의 과업’에 매달리겠다는 자세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아베의 꼼수가 얄밉기 짝이 없지만 일본 국민에겐 그 작전이 잘 먹히고 있다.

총재 선거 경쟁 4명 중 셋을 요직 기용
그가 심혈을 기울인 ‘뉴 아베 플랜’은 “건방 떨지 않겠다”는 자세에서 출발했다. 총선(중의원 선거)이 치러진 지난해 12월 16일 밤, 480석 중 300석 가까이를 싹쓸이한 자민당의 압승이 분명했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카메라 기자들이 “제발 좀 웃어달라”고 사정할 정도였다. TV 생중계 인터뷰에서도 “민주당 정권에 국민들이 ‘노(no)’라고 한 것일 뿐이다. 자민당이 정말 바뀌었는지는 앞으로 가혹한 체크를 받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전후 세대 첫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당시 52세)라며 기고만장했던 6년 전과는 달랐다.

열흘 뒤인 12월 26일 총리 취임 회견도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했다.

“(2006년엔)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지금보다 젊었고, 이상에만 불탔다. 그래서 나와 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들만 모으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반드시 나와 의견이 일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넓은 관점에서 능력을 중시해 내각을 짰다. 좌절했던 경험을 살리고 싶다.”

새 출발하는 그의 첫마디는 과거 자신의 인사(人事)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었다.

도대체 ‘2006년 아베 팀’의 면면이 어땠을까. 제1차 아베 내각은 ‘도모다치(友達·친구) 내각’ ‘논공행상 내각’으로 불리며 아직도 역대 최악의 조각 사례로 꼽힌다.

당시 논란이 가장 컸던 인물은 관방장관에 임명된 시오자키 야스히사(?崎恭久)였다. 초선 때부터 별도 모임을 만들어 함께 어울린, 아베에겐 친구 같은 존재였다. 관저를 총괄하는 핵심 요직에 각료 경험이 전무한 그가 임명됐다는 소식에 시오자키의 부인마저 “정말이냐”고 반신반의했다는 일화가 있다. 아베는 다른 중요한 자리도 자신의 지지자로 채우며 반대파를 배제했다. 총재 선거에서 아베와 격돌했던 두 명의 라이벌 중 아소 다로(麻生太?)는 외상에 기용했지만,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와 그의 지지자들에겐 일절 자리를 주지 않았다.

이 인사는 두고두고 아베를 괴롭혔다. 각료들의 실수·불상사가 이어지며 정권은 안에서부터 곪아 들어갔다.

‘아베 대세론’을 열심히 유포했다는 공(功)으로 발탁된 농수산상은 정치자금 의혹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후생노동상은 가임 여성을 ‘애 낳는 기계’에 비유해 망신을 당했고, 방위상은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실언을 뱉어냈다. 그때마다 권력에서 배제된 당내 반대파는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를 가장 잘 기억하는 아베가 ‘뉴 아베 플랜’을 인사개혁으로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로 컴백한 아베는 총재 선거 결선에서 맞붙었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를 당내 2인자인 간사장에 기용했다. 당 간사장에도 자기 사람(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을 심었던 2006년과는 딴판이었다. 아베는 언제든 비토 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는 정적들을 자기 편으로 묶어뒀다.

내각 진용도 6년 전과는 달랐다. 측근 선호 성향은 그대로였지만 이번엔 반대파를 끌어안는 ‘아베식 탕평책’이 함께 가동됐다. 총재 선거에서 격돌했던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를 환경ㆍ원자력 방재 담당상에,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를 농림수산상에 앉혔다. 자민당 간사장에 유임된 이시바까지 포함하면 총재 선거 경쟁 후보 4명 중 셋을 당·정 요직에 기용했다. 그렇다고 아무 자리나 막 내준 것도 아니다. 농림수산상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참가 시 농민 반발을 무마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또 원전사고 후유증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환경ㆍ원전상 역시 부담이 큰 자리다. 당내 지분을 인정하면서도 책임도 함께해야 한다는 탕평과 압박이 공존한 카드였다.

1차 때와 달리 언론·국민과 소통 노력
내각의 무게감도 고려됐다. 아베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다니가키 사다카즈 전 총재를 법무상에 기용했다. 부총리 겸 재무상인 아소 다로와 아베 본인까지 합치면 총재를 지낸 인물이 세 명이나 내각에 포진됐다. 하지만 관방장관과 문부과학상은 측근들로 채웠다.

‘탕평+무게감+측근 기용’의 용인술에 대해 고바야시 요시아키(小林良彰) 게이오대 교수는 “신선함보다는 견실함을 우선한 거당일치 전원야구내각”이라고 평가했다. 6년 전 ‘친구 내각’이란 혹평이 이번엔 ‘올 재팬(All Japan) 내각’이란 찬사로 바뀌었다.

라이벌에게 당을 맡긴 용인술은 최근 TPP 교섭 참가 국면에서 빛을 발했다. 교섭 참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 13일 열린 ‘시간 무제한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서 금방이라도 당을 깰 것처럼 행동했던 반(反)TPP파들을 주저앉힌 것은 이시바 간사장이었다.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3월 중순 노사 임금 협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아소 부총리는 아베 대신 총대를 멨다. 민간 소비를 늘리기 위해 임금을 올리라고 경제단체들을 압박했다. 총리를 지낸 아소의 거센 압박 앞에서 많은 기업들은 보너스와 기본급을 인상하며 아베노믹스에 화답했다.

다른 한편으로 아베는 각료들의 실언을 막기 위한 군기 잡기에 열중하고 있다. “각료들 실언 한마디에 100만 표씩 날아갔다”는 말이 나왔던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극우망언파 각료들의 입을 자물쇠로 꽁꽁 채우고 있다. “난징대학살은 허구”라는 극우적 역사 인식에다 2011년엔 독도 영유권 항의차 울릉도 방문까지 시도했던 이나다 도모미(?田朋美) 행정개혁상이 대표적이다. 보수 여(女)전사 이미지가 강했던 그였지만 최근엔 말을 너무 아끼다 “존재감이 전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도 망언을 일삼는 맹목적인 아베 추종자’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장관도 최근 TV에 출연해 “아베 총리가 말조심을 신신당부했다”며 입을 닫았다.

아베는 “일본의 역량을 풀가동하자”란 의미로 ‘올 재팬(All Japan)’을 강조하며 외교전선으로 전직 총리들을 차출하고 있다.

아소 다로를 한국에 특사로 보냈고, 모리 요시로(森喜朗)를 북방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러시아 특사로 보냈다. 사실 모리 전 총리는 지난해 9월 아베의 자민당 총재 경선 출마에 반대했다. 당시 그는 TV에 출연해 “(한 번 총리를 했던) 아베의 판단이 좀 안이한 것 같다. 이번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게 좋다”며 아베의 경쟁자들을 두둔했다. 이를 계기로 아베와 모리 사이가 소원해졌지만, 아베는 관저 회동을 통해 푸틴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인 그에게 기어이 러시아 특사직을 맡겼다. 이 역시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아베는 언론과의 소통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 1월 이슬람 무장단체가 알제리 천연가스 시설을 습격해 일본인 희생자들이 발생했을 때 아베는 동남아 순방 중이었다. 그는 출장지에서 현장 상황을 원격 지휘하며 “정부의 대응과 현지 소식을 언론에 곧바로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시했다. 관방장관은 심야·새벽을 가리지 않고 관저 브리핑을 계속 했다. ‘언론이나 국민과의 불통이 정권의 힘을 깎아먹는 최대의 적’이란 사실을 제1차 아베 내각 때 절절하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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