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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먹고 살 수 있는 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결혼 16년을 청산한 현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살 권리를 가졌다고 이르고 사람으로서 산다면 양심을 떳떳이 가지고 살아나갈 수 있는 활동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여 국가는 이를 모든 법으로써 보장할 것을 헌법에서 엄숙히 선언하고 있다. 그러면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 우선 먹어야 산다, 입어야 산다, 그리고 비와 바람을 피할 집이란 것을 가져야 하고, 또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한다. 그러나 자유는 굶는 자유, 권리는 제 자식도 저도 죽어버리는 자살의 권리밖에 있다면 이는 어떻게 된 일일까. 국민의 생명은 국가와 그 법의 보호의 테두리 밖에 떨어지고 사람의 인권이나 자유는 처치조차 곤란한 쓰레기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지난 초하룻날 밤, 부산시 괴점동 산비탈에 사는 서른 다섯 살 나는 여인이 위로 열 다섯 살부터 여섯 살까지의 네 딸과 아들에게, 그도 아이들에게 죽음을 알리고 잠자는 약을 먹이고 연탄「가스」를 먹게 하고 그래도 모자라 두레박줄로 목을 졸라 죽인 다음 저 자신은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타죽고만 사건이 있었다. 제 몸을 불에 태워 재로 만든 여인의 시체 위에 우리는 더 무엇을 나무랄 말이 있을 수 없다. 결혼생활 16년에 갖은 고생을 다 해가며 남편을 섬겨보려는 그 아낙네는 마지막 가는 길에 술과 무엇에 놀아난 집안살림을 돌볼 줄 모르는 그 남편에게 애써 길러오던 보람의 아이들을 죽게 했던 그 밤의 광경과 아울러 풀어질 수 없는 원한을 말한 급발을 남겼다. 그 글월이 어찌 그 잘난 그 남편 한 사람에게 보냈다 뿐이랴! 천하의 남편, 천하의 이웃, 이 사회, 이 나라에 바치는 희생의 제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살다죽기 한가지라지만>
어머니의 죽음의 편지 뿐 아니고 그의 딸 열 한 살 먹은 쌍동딸중의 하나인 덕희의 죽는 그날 저녁까지의 일기가 있다.
찬바람 불고 비 내리고 눈이 쏟아지는 날 냉방에서 굶다 또 굶다못해…어떤 험한 길이라도 어머님이 가는 길을 따라 가겠다…고 하면서 죽음의 어두운 길을 한 걸음 또 한 걸음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광경을 적어 놓은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어찌 열 한 살 짜리 어린이의 글이라고 할 수 있으랴. 생각은 맑고 보는 눈은 총명했던 것이 그의 일기의 구절 구절에 뚜렷하다..
덕희는 먼저 그 아버지를 원망하다…아버지는 우리에게 무엇을 옳게 해주시기에 가라 오라 하실까? 나는 아버지가 아닌 것 갈았다. 왜 그럴까? 고 하면서『…아버지가 싫어졌다…아버지가 미워졌다…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버지 같지 않고 또 밉고 원망스럽다고 생각하기까지에는 덕희의 어린 마음에도 의문이 적지 않았다. 덕희는 여러 구절에서 이것도 궁금했고 저것도 궁금했다고 했다. 어린 생각에도 생각할 수 있는 데까지 의문을 풀고 고생을 이겨 나가려고 애쓰는 자취가 말갛게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덕희는 또 이렇게 쓰고 있다.『…종일 밥을 굶고 배가 고파서 몸부림치고 어머니를 기다렸다. 밥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고마운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저녁밥을 먹고 난 뒤에 어머니께서 우리들을 보시고 아버지와 같아 살겠느냐? 아니면 험한 길이라도 어머니를 따르겠느냐? 물으시기에 우리 형제는 모두 어머니를 따르겠다고 말했다…』고, 여기서부터 죽음 길을 택하자는 어머니의 말이 나온다.
그 어머니의 유서에는 잠자는 약을 먹일 때 아이들이『이것 먹으면 죽지요?』하더라는 말과『어머니는 왜 아니 먹어요?』하더란 말까지 적혀있다. 사람이 살다가 죽기는 매일반이라고도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죽어야 한단 말일까! 그 어린 생각의 그 맑은 정신으로 죽음의 길을 무한한「궁금」과「원한」을 말하면서.
그 뿐이랴, 덕희는 그 일기장에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못 살까? 어떻게 하면 남들과 갈이 잘 살 수 있을까? 아버지는 왜 언제나 술만 좋아하실까?』『…나의 생활은 너무나 비참하구나!…』열 한 살 먹은 어린 처녀애가 생활의 비참을 한탄하며, 왜 못 살며,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하는 것을 제아무리 생각한단 덜 어떻게 헤어날수 있겠는가. 또 다섯 아기를 홀몸으로 맡아야하는 그 어머니는 어떻게 헤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불가능한 일이다.

<소녀의 비탄…"왜 못살까">
그보다도 그런 어린아이에게 그처럼 신세를 한탄케 하고 세상을 원망스럽게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이 누구의 어떤 책임에 속할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덕희의 가슴에 맺힌 원한은 술만 좋아하고 집안을 돌볼 줄 모르는 그의 그 아버지뿐일까. 그 아버지의 무책임은 더 말할 나위 없으리라. 그러나 그런 아버지는 덕희의 아버지뿐일 것이냐. 천하의 아버지, 그 어머니, 그 이웃, 이 사회, 이 국가는 책임이 없을까!
이제 이 사회,이 나라는 무책임한, 또 무능한 아버지·어머니의 보호의 손에서 벗어난 헐벗고 굶주린 어린이들에 대한 보호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 아닌가. 이제 덕희는 갔다. 그 어머니도 타 버렸다. 그러나 호소는 이 하늘에 살아있다. 우리는 덕희와 그 어머니의 애절한 호소를 받아들일 길을 열어 줄 수 없을 것인가. 당연히 그 길은 열려있어야 한다.
거리에 불어있는 인권상담소라는 간판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 하는 것인가. 나라에「국권」이 있는 이상 사람은 먹고 살 수 있는「인권]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함으로써 덕희가 쓰다가 다 못쓰고 간 일기장의 가냘픈 호소는 이 나라 인권옹호의 영원한 기념탑이 되게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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