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비 거품 뺀다” 칼 빼들었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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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은평구 진관동 A아파트는 한 달 관리비가 1㎡당 274원이다. 인근 B아파트는 1㎡당 534원이다. 똑같이 148㎡(45평)에 살아도 A아파트의 주민은 한 달에 4만600원의 관리비만 내지만 B아파트는 7만9300원을 내야 한다. A아파트가 관리비를 낮출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는 쓰레기 재활용 판매나 알뜰시장 입점 등을 통해 거둔 수익을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적립한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엘리베이터를 수리하거나 외벽을 칠하기 위해 징수하는 비용이다.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일단 쌓아둔다는 얘기다. 그러나 A 아파트는 주민자치위원회와 관리소가 합의해 이를 충당금에 적립하는 대신 관리비를 줄이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이곳 주민은 매년 5000만원의 관리비를 줄일 수 있었다.

 서울시가 12일 발표한 ‘아파트 관리 혁신 방안’은 이렇게 아파트 관리 운영을 투명화해 관리비 등 각종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문제는 민간 아파트 단지가 자율적으로 하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라 관이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같은 아파트라도 단지마다 관리비가 2~5배까지 차이가 난다”며 “자율적으로 하는 게 가장 좋지만 잘 안 되니까 시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혁신안에 따르면 앞으로 관리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아파트마다 달랐던 관리소의 회계 항목은 통일시킬 방침이다. 공사용역 입찰 및 계약 내용도 공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아파트 포털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을 구축하기로 했다. 서울 아파트는 총 3394단지인데 이 중 150가구 이상인 1944단지가 여기에 정보를 공개하도록 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아파트를 건설한 후 관리 및 보수 계획을 담은 ‘장기수선 표준계획서’에 대한 감독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재건축을 기대해 제때 보수하지 않는 폐해를 막기 위해 서울시가 직접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서울시의 이번 방침에 대해 취지는 공감하지만 민간 단지를 관이 관리 감독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을 한다. 김현소 한국자치학회 자문위원은 “시에서 아파트를 지어준 것도 아닌데 각종 사업과 운영까지 개입하는 건 지나친 월권”이라며 “입주자자치위원회 등 주민 자치 기관이 유명무실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시는 이번 혁신안에 불응하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범칙금을 내게 하는 등 행정처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장은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정부에 관련법을 개정하도록 정부에 요청하는 한편 자치구를 통해 각 아파트가 자율규약에 이 안을 포함시켜 행정 지도 및 벌금을 무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김용석(새누리당) 서울시의원은 “많은 사항이 입주자대표회의와 연관돼 있는데, 자율규약이라면서 시민에게 벌금을 물게 하겠다는 것은 취지가 좋아도 반발을 사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성운·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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