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유무역협정 체결…아세안에 병주고 약준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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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맞서 아시아의 경제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일본이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중국이 동남아연합(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겠다고 나서자 일본은 FTA보다 범위가 더 넓은 경제협력 구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와의 FTA 체결도 그 첫걸음이다.

◇ 일본은 뭘 겨냥하나=한마디로 중국을 견제하면서 아시아를 계속 품안에 두자는 계산이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주변 아시아 국가에게 직접 투자를 늘리고 수출을 확대하기 시작하자 일본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수십년간 닦아온 텃밭을 중국에 내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수출 증대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 싱가포르와 FTA를 서둘러 체결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자유무역협정은 일본 내부의 문제를 개혁하기 위한 지렛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FTA는 우선 무역.관세.수출입 등 대외 경제정책의 변화를 우선 요구하는 동시에 노조.농민등 이해집단의 기득권을 줄이는 작업과도 연결된다.

그동안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각종 규제개혁이 실패한 일본으로서는 일종의 국제적 공약사항인 FTA를 시작으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 농수산물이 관건=이번 일본.싱가포르의 FTA는 가장 민감한 농수산물이 제외돼 사실 아시아국가들의 자유무역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일본이 앞으로 아세안과 경제협력을 추진한다지만 이 경우 농수산물이 최대 관건이다.

지금도 이들 국가에게서 94억달러의 농수산물을 수입하고 있는 마당에 앞으로 자유무역까지 할 경우 농산물 수입급증으로 일본 농민들의 반발이 커질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농산물을 빼놓으면 농산물이 주요 수출품인 아세안 국가들로서는 일본과 FTA나 경제협력을 추진할 이유가 없게 된다.

◇ 모순되는 일본의 무역정책=일본은 자국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엔저 유도정책을 쓰고 있다.

엔저가 계속되면 아세안 국가들은 수출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은 물론 통화가치가 불안해지는 위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엔저정책을 유지하는 동시에 아시아를 중시한다며 '아시아권 FTA'등 포괄적인 경제협력구상을 제의하고 나섰다.

아세안 입장에서는 일본이 병주고 약주는 셈이다. 그것도 '병'은 당장 깊어가는데 '약'의 효과는 불확실하다. 일본 언론들도 이런 모순은 제대로 지적하지 않은 채 일본 주도의 아시아 경제권 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한.일 FTA는 어떻게 돼 가나=일정상으론 양국 학계의 연구에 이어 올해 양국 재계간 협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일단 농수산물을 제외한 공산품.서비스를 대상으로 먼저 FTA를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FTA체결 자체에 대한 확실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관세인하.인적교류.투자확대 등을 건별로 요청해 왔다.

지난해 역사교과서.야스쿠니(靖國)신사 문제 등으로 국내에서 대일감정이 악화된 것도 FTA 추진에 큰 장애물이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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