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서는 CEO 버금갈 전문지식 갖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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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는 비서직을 찾는 이력서가 1천 5백장이나 쌓여 있다. 출근하자마자 전화통을 붙잡고 구직 희망자들과 상담하고 하루 대여섯명을 인터뷰 한다. 간혹 대기업체 비서실에 전화를 걸어 '물건'이 될만한 사람에게 이직 의사를 은밀하게 타진한다.

IBK컨설팅의 컨설턴트 김미환(金美煥.30.사진)씨의 하루 일과다.

국내 유일의 비서 전문 헤드헌터인 그는 1999년부터 3년째 이 일을 맡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명 꼴로 기업체에 비서를 연결해준다. 지난해 50여명, 올해 들어서도 4명을 소개했다.

구직자들은 20대 중반~30대 초반의 3년 이상 경력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들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기 위해 새 둥지를 찾는 사람들이다. 기업 고객들은 외국계 제약.금융.항공회사가 많다.

"비서가 커피를 끓이고 복사를 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단순 업무 보조역이 아니라 최고경영자(CEO)가 자리를 비웠을 때 업무를 대신할 정도의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비서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金씨는 그 자신이 비서 출신이다. 성신여대 지리학과 졸업 후 일본 항공회사에서 3년 동안 비서로 일한 뒤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 이력서를 냈다가 헤드헌터로 스카웃됐다.

그는 비서의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이력서만 믿고 기업에 소개하지 않는다. 구직자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직장을 옮기려는 동기와 포부, 희망하는 보수 등을 꼼꼼히 챙긴다.

인터뷰 도중 돌발적으로 영어나 일어로 말을 걸어 외국어 구사능력을 측정한다. 즉석에서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도록 시키기도 한다. 얼굴 표정이 밝은지 말씨는 공손한지도 주의깊게 살펴본다. 비서가 기업의 이미지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金씨는 "CEO가 개인통장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성과 정직성, 위기 상황에서 빠른 판단력과 대처능력이 비서의 필수 덕목"이라고 꼽는다.

비서를 기업에 주선한다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취업한 뒤에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새 직장에 잘 적응하는지, 고민은 없는지 묻는 등 '애프터서비스'를 한다. 이같이 꼼꼼하게 일을 처리한 덕분에 단골 기업까지 생겼다.

그는 "비서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비서의 경력과 능력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이력서에 붙은 사진만 보고 퇴짜를 놓는 기업인이 있다"고 꼬집었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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