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암벽 오르는 ‘스파이더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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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도 힘들다고 혀를 내두르는 스포츠클라이밍. 이 신종 스포츠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초등학생이 화제다. 주인공은 온양천도초등학교에 재학중인 김란(13)양. 김양은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한 이래 제24회 전국금정스포츠클라이밍대회 여자 유스A 난이도부문 3위, 제7회 대구광역시장배 전국스포츠클라이밍대회 여자 초등부 2위, 광주광역시 전국클라이밍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5일 김양을 만나 스포츠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이유와 여러 사연을 들어봤다.

글=조영민 기자 , 사진=조영회 기자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를 꿈꾸는 ‘스파이더걸’ 김란(온양천도초· 6)양이 아산 신정호 인공암벽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며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요? 당연히 지난해 광주에서 열렸던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순간이죠. 제한 시간이 5분이었는데 12m 높이의 암벽을 1분35초 만에 완등 했어요.”

이날 오전 12시에 만난 김양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김양은 평소 암벽등반을 즐기며 “몸의 건강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란 아버지 김재훈(41)씨의 ‘강요 아닌 강요’에 못 이겨 초등학교 2학년 때 난생처음 암벽 타기에 나섰다. 처음 배울 당시 2, 3칸 정도만 올라가도 무섭다고 줄에 매달려 울고 불고 했던 김양은 배운지 1년 만에 12m의 암벽을 ‘완등’하며 ‘소녀 클라이더’로서의 재능을 빛내기 시작했다. 또한 4학년 때부터는 각종 전국대회에 나가 자신보다 체격이 크고 다부진 몸을 갖고 있는 또래 아이들을 제치고 당당히 입상하는 저력을 보였다.

“아빠가 장난스럽게 저에게 말씀하시곤 했죠. ‘넌 공부에 소질이 없으니 스포츠클라이밍으로 우리나라 최고가 되라’고요. 처음에는 그 말씀이 섭섭하기도 했는데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다 보니 정상을 정복하는 성취감을 느껴요. 또 전신운동이기 때문에 몸 전체가 튼튼해질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인 것 같아요.”

비교적 일찍 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양의 이력은 학교에서도 단연 화제다. 아산지역에는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아 김양을 따라 이 스포츠를 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꽤 많은 아이들이 아직은 어린 나이기 때문에 꿈 없이 살아가요. 전 스포츠클라이밍이 정말 재밌거든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는 목표도 분명하죠. 이런 부분 때문에 주변친구들이 절 부러워해요. 또 어떤 친구들은 저에게 스포츠클라이밍이 어떤 운동이고 무슨 매력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해요. 그리고 저에게 같이 동을 해보자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다 무산됐죠.”

가족 모두가 스포츠클라이밍 매력에

김양은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부터 해가 지기 전 5시30분 정도까지 아산 신정호 공원 안에 있는 인공 암벽장에서 연습에 몰두한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새벽 6시나 7시부터 연습을 시작한다고 한다.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연습량을 정해놓고 피나는 훈련을 한다. 평일에는 김양의 남동생과 함께한다. 주말에는 아버지 김씨도 합류한다.

“동생도 저와 함께 다니다 자연스럽게 스포츠클라이밍에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아직 전국대회에 출전해 입상할 실력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아요. 같이 연습하니까 힘든 줄도 몰라요. 오히려 연습을 하지 않으면 더 불안하고 초조해져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전문 스포츠클라이밍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김양은 동생과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끔은 다른 지역을 찾아가 인공암벽장에서 훈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한 장소에서만 훈련하면 실력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인천·광주 등 안 다녀 본 지역이 없을 정도다.

“오르지 못했던 코스를 올랐을 때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기쁨을 맞볼 수 있죠. 다른 지역에 가는 게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이유에요.”

김양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동시에 지도까지 해주고 있는 아버지 김씨는 “란이는 자세가 좋고 성실해 선수로 대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는 아산 동호회원들은 란이가 암벽 타는 모습을 보고 ‘남자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 정도의 실력’이라며 극찬하기도 한다”고 칭찬했다. 이어 “란이가 국가대표로 발탁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도와주고 싶고 나 역시 스포츠클라이밍을 열심히 해 부족한 부분을 조언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자인 언니처럼 뛰어난 선수 되고파

김양에게는 언제나 전국대회 때마다 만나는 친구이자 라이벌이 있다. 바로 포항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 손승아(포항 장성초)양이다. 김양은 손양 때문에 늘 여러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에 머물렀다고 한다.

지난해 광주대회에서 처음 우승을 한 것도 손양의 갑작스런 부상 때문이라고 겸손해 했다.

“언제나 승아와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대회에서는 승아를 꼭 넘어야겠다는 작은 목표를 세우죠. 근데 저번 광주대회에서 승아가 다쳐 출전을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됐어요. 제가 우승했을 때는 짜릿했지만 한편으로는 승아가 걱정이 됐어요.”

김양은 대회를 통해 손양과 만나 경쟁관계에 있지만 평소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정보를 교환하며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고 한다.

6월 쯤에 열리는 제4회 고미영컵 전국청소년스포츠클라이밍대회를 앞두고 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양, 고미영컵은 초등부 전국 대회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회이기 때문에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있다. 또한 손양을 다시 만나 정정당당한 경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김양의 큰 꿈은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가 돼 국제 그랑프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 그의 롤모델 역시 요즘 뛰어난 실력으로 ‘암벽 여제’라 불리는 얼짱 김자인(25)언니라고 한다.

“자인이 언니를 볼 때마다 저 스스로 ‘언니처럼 멋진 선수가 돼 우리나라를 빛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요. 자인이 언니는 정말 지구력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요즘엔 지구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언젠가 국가대표가 돼 언니와 함께 암벽을 타는 날이 있겠죠.(웃음)”

◆스포츠클라이밍=스포츠클라이밍은 산악 등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암벽 등반을 인공 시설물을 이용해 즐기는 스포츠다. 건물 벽면이나 암벽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합판, FRP 등의 구조물에 인공 홀드를 설치해 놓고 손과 발만을 이용해 벽면을 따라 이동한다. 인공암벽의 국제 규격은 높이 12m, 길이 15m다. 벽의 각도에 따라 경사벽(90도 이하), 수직벽(90도), 오버행 벽(90도 이상)으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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