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에 계란 세례' KTF 핌 광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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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1996년 신세계 광고='1967년 윤복희 미니스커트 1호'라는 자막이 화면에 나타난다. 이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공항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나오며 내레이션(해설)이 흐른다. "이 땅에 미니스커트 1호가 나타났을 때 그녀가 입은 것은 옷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잠시 후 자동차를 타는 여성을 향해 계란 세례가 이어진다. "미쳤어!"깜짝 놀란 여성은 "아"하며 소리를 친다.

이어 윤복희씨의 얼굴을 배경으로 "꿈과 용기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라는 자막이 화면에 새겨진다.

#2003년 KTF '핌'광고=서태지가 공항에 들어서자 팬들의 계란 세례가 이어진다. 이어 포스터가 갈가리 찢겨진다. TV화면조차 돌에 맞아 깨져 있다. 팬들이 지르는 아우성이 여기저기 들린다.

"정말이지 서태지 당신은…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면 절대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라. 당신은 새롭고 도전적이고 창조적이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자만하지 마라. 당신은 더 새롭고 놀라워야 한다. 구태의연한 그 어떤 걸로도 우리 앞에 결코 나타나지 마라."

가수 서태지씨가 1년간 32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모델료를 받아 화제가 되고 있는 KTF의 '핌'광고. 기본 포맷과 전하는 메시지가 7년 전 인기를 끌었던 신세계의 '개척자 시리즈'광고와 비슷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핌은 KTF가 제공하는 무선 멀티미디어서비스로 최근 런칭을 하며 서태지씨를 모델로 내세웠다. 서태지씨가 받는 32억원은 '핌' 광고모델료와 함께 '핌'을 통해 선보이게 될 서태지씨의 모든 콘텐츠에 대한 사용료가 포함된 금액이다.

◇어떤 점이 비슷한가=신세계가 선보인 '개척자 시리즈'광고는 미니스커트를 처음 입은 가수 윤복희,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당시 청소년의 우상이었던 서태지 등을 등장시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줘 그해 한국광고대상을 받았다.개척자는 욕설과 따가운 눈총, 심지어 돌팔매질을 당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새로운 세계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편에서는 가수 윤복희씨가 공항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오자 그를 보며 수군대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계란세례를 받는 장면을 보여줬다.

2편에서는 가수 서태지씨의 사진에 X자로 스프레이칠을 한 장면을 연출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사진에 불길한 의미의 X자를 칠하고 모델에게 계란세례를 하는 등 말 그대로 '모델 모독'이라는 파격을 통해 개척자 이미지를 부각했다.

25일 첫선을 보이는 KTF의 핌 광고도 신세계 개척자 시리즈 광고 1편과 상당히 비슷하다. 공항이라는 배경 설정과 주인공이 공항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모델의 얼굴을 향해 계란 세례가 이어지는 것 등 매우 유사한 포맷으로 구성돼 있다. 더욱이 신세계 광고와 KTF 광고 모두 웰콤에서 제작했다.

다만 신세계 광고는 개척자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모습을 그렸다면, 이번 KTF의 핌 광고는 젊은이들의 우상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광고업계의 한 관계자는 "똑같은 회사에서 예전에 인기있던 광고를 활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서로 다른 제품에 대한 광고를 제작하면서 포맷과 전하는 메시지가 비슷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웰콤 관계자는 "신세계 광고가 구습타파의 메시지를 갖고 있는 반면 핌 광고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를 통해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면 고객에게 보여주지도 들려주지도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식지 않은 '서태지 광고' 열기=일본 간사이 공항에서 촬영된 핌 광고는 일본 엑스트라 4백50명, 한국 엑스트라 50명이 동원된 대형광고이다. 여기에 입국하는 장면에는 93년부터 10년 동안 서태지씨를 경호하던 경호실장이 등장한다. 웰콤이 서태지씨의 경호원을 광고에 등장시킨 것은 바로 팬들 때문이다.

웰콤은 "일반 모델을 쓰려고 했지만 서씨 팬들이 오랫동안 서씨 옆에 있던 경호실장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출연시켰다"고 말했다.

신문광고가 처음 나간 지난 16일에는 일부 스포츠 신문의 가판이 동났으며 KTF 고객센터에 광고가 하루만 나오느냐는 문의가 빗발쳤을 정도로 팬들의 관심이 높았다.

특히 전국 2천5백여개 KTF매장은 광고 포스터를 뜯어 가거나 달라고 하는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에 따라 KTF는 매장 비치용으로 만든 포스터 1차분(5천장)과 별도로 2차분 10만장을 만들어 고객에게 나눠주고 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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