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마음 졸이는 경제부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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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 선수와 진념 부총리.

공통점이라면 지난해 11월 자괴감에 빠진 경험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자신들의 보스에 대해 면목 없어 하면서 마지막 기회의 구원투수가 될 지 여부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 것이다. 김선수는 월드시리즈에서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두번이나 놓치자 마운드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안타까운 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 선발요원보다 구원 투수로

진념 부총리는 취임 당시 9% 이상 성장하던 경제가 불과 1년 만에 1%대까지 추락하게 되면서 곤경에 처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하반기에 가면 경제가 회복된다고 공언해 오던 터라 윗분을 뵐 낯이 없게 되었다.

김병현선수는 결국 7차전에서는 구원투수로 등판하지 못했다. 다이아몬드백스의 브랜리 감독은 경기의 막바지에서 관록의 선발투수 랜디 존슨을 기용했던 것이다.

반면에 김대중 대통령은 부총리의 경질여부에 관해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결정을 어렵게 하는 사정은 여러가지다. 우선 경제가 어려워진 것이 반드시 진념 부총리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압력과 비협조, 선진국의 경기후퇴, 미국의 테러사태 등이 국내경제를 옥죄어 왔던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증시가 되살아나고 실물경제 또한 회복의 징후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전임자들의 사례를 참고하고자 해도 혼란스럽기만 할 뿐 별로 도움이 못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를 1년 정도 남긴 시점에서 부총리를 바꿔 난국을 풀어보고자 했지만 오히려 국가경제는 파탄으로 치닫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경질이 거의 확실시되던 최각규 부총리를 유임시키기까지 했어도 경제의 추락은 계속되었다.

특히 대선 직전인 1992년 3분기에는 11년 만에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3.1%)이 기록됨으로써 경제면에서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조만간에 결말지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중요한 시점에서 경제정책의 총수인 부총리가 마음을 비우고 있다느니 벌써 한두번 짐을 쌌다느니 하는 풍문이 돌아서는 안될 일이다.

부총리를 포함한 경제팀의 개편 여부를 결정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올해 경제가 지난해보다 나아진다는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이 맞아 떨어진다면 적어도 전임 두 대통령보다는 경제실적면에서 나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부총리감으로도 끝마무리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짚어야 할 것이다. 현실감 없이 논란만 많을 일을 벌이는 사람은 경제를 교란시키고 국가의 분열과 국민들간의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게 할 뿐이다. 선발투수감을 구원투수로 등용했다가 실패한 전례를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또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경제부총리는 능력과 경륜도 물론 뛰어나야 하겠지만 지금 같은 때에는 도덕성에 있어서도 흠결이 없는 인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갖가지 게이트가 연일 신문 1면을 뒤덮어 왔어도 외국인 투자가들은 그다지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주식투자를 늘려왔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혹시라도 고위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의혹이 불거지고 신뢰도가 실추되어 경제관리능력이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면 외국인 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고 새로운 위기가 닥칠 위험이 있는 것이다.

*** 경질.유임 빨리 결정해야

현 부총리가 유임되든 새 부총리가 임명되든간에 특히 중요한 일은 대통령이 그에게 깊은 신뢰를 갖고 그것을 수시로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기 말이 되면 부처간의 대립과 마찰이 표면화하고 경제정책들이 표류하게 될 위험이 있다.

대통령의 권력도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게 마련인데 그 힘마저 경제부총리에 모아지지 않는다면 산적한 난제들을 풀어갈 길이 없을 것이다.

실수한 김병현에 대해 끝까지 신뢰감을 표시한 브랜리 감독과 임기 말에 경제팀을 못믿고 다른 정보통에 의존하곤 했던 어느 전직 대통령의 사례를 비교하며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노성태 <논설위원 겸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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