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후쿠시마의 봄을 재촉하는 젊은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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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27~28일 이틀간 찾은 후쿠시마(福島)는 방사능과의 싸움에 지쳐 있었다. 후쿠시마시 적십자병원 1층의 방사능 검사실 앞에 줄을 늘어선 사람들, 2.7평의 가설주택에서 외롭고 고된 삶을 이어가는 미나미소마(南相馬)시 우시고에(牛越) 단지 할머니들의 얼굴엔 깊은 시름이 떠나지 않았다. 2년이란 세월이 그들에겐 20년보다 더 길었을 듯싶었다. 원전사고가 이 사람들의 등에 얹어 놓은 돌덩이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고리야마(郡山)시에서 만난 34세의 영농후계자 후지타 고시(藤田浩志). 그에게도 2년 전 원전사고는 청천벽력이었다.

 원전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자 두 살짜리 아기와 부인의 손을 잡고 도쿄로 피난을 떠났다. 1850년 이전부터 8대째 이어오던 ‘후지타 농원’을 포기할 것인가, ‘방사능 범벅’으로 의심받는 후쿠시마쌀을 누가 먹어 줄까 하는 걱정에 몇 달을 고민했지만 그는 결국 돌아왔다. “이 정도 시련에 고향과 농원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지금 그는 대지진 이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일본 정부가 정한 식품 방사능 허용 상한치의 5분의 1도 안 되는 검증된 농산품만 시장에 내놓았다. 또 홈페이지에 방사능 검사 결과를 매일 공개하는 것으로 소비자의 신뢰도 얻었다. “후쿠시마의 농민을 응원하고 싶다”며 일부러 ‘메이드 인 후지타’를 찾는 고객들까지 생겨났다. 그는 이제 “후쿠시마에서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안전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만들겠다”며 국내외 고객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후쿠시마시에서 만난 27세 여성 가마다 지에미(鎌田千瑛美)는 아예 도쿄의 직장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경우다.

 원전 북쪽 미나미소마시 출신인 그는 고향집이 쓰나미에 휩쓸렸다. “도쿄의 풍부함과 윤택함이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후쿠시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는 그는 지난해 1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깨가 축 처진 고향 청년들을 위해 각종 이벤트를 벌이는 봉사단체 ‘피치 하트’의 대표인 그는 “후쿠시마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멋진 후쿠시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병원에 방사능 검사를 받으러 왔으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싸워 이겨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15세 고등학생의 말, 폐교를 앞두고도 지역 전통 사자춤 계승에 몰두하는 미나미소마 마노 초등학교 학생·학부모의 눈빛에서도 비슷한 희망이 묻어났다. 상처투성이 후쿠시마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봄을 재촉하는 힘은 후쿠시마의 미래를 생각하며 후쿠시마의 오늘을 보듬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서 승 욱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