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팬 앞에서 멋지게 우승하려 ‘2온’ 욕심내다 낭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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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 19면

골프에서 마지막 18번 홀은 ‘악마의 홀’일까. 골프 역사에서 악몽의 순간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더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것은 역시 ‘최악’의 순간이다. 프랑스 출신 장 방 드 벨드(47)는 20세기 골프에서 정말 비운의 골퍼다.

18번 홀 트리플보기로 무너진 泰 주타누가른, 왜?

그는 1999년 영국 카누스티 골프장에서 열린 디 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에서 한 홀을 남기고 3타 차 선두였다. 하지만 생애 첫 메이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 앞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그는 18번 홀(파4)에서 러프와 벙커를 오간 끝에 트리플보기를 적어냈다. 먼저 경기를 끝냈던 폴 로리(44·스코틀랜드)는 집으로 향하던 중 소식을 듣고 골프장으로 돌아와 연장전 끝에 우승컵을 가져갔다. 로리는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가 됐지만 한 선수는 최악의 역전패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사건은 또 투어무대 캐디들 사이에서 ‘최악의 캐디 실수 사례’로 꼽힌다. 캐디 크리스토프 앤지오리니는 장 방 드 벨드에게 어프로치 샷을 2번 아이언으로 하도록 권유했다. 그 홀에서 6타(더블보기)만 기록해도 우승할 수 있었던 이 프랑스 선수는 7타를 기록했다. 그는 이 대회 이후 7년 만인 2006년 3월 자신의 유러피언투어 88번째 대회인 마드리아 아일랜드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암흑 같은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지난달 24일 태국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 마지막 날에도 이 같은 대형참사가 빚어졌다. 아리야 주타누가른(18·태국)은 2타를 앞서 있었지만 긴장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18번 홀(파5)에서 트리플보기를 적어내 박인비(25)에게 역전패했다. 박인비에게는 ‘넝쿨째 굴러온 행운’이었지만 주타누가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최악의 홀이 됐다. 그는 며칠 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다”고 고백했다. 그의 설명은 핵심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그를 지켜본 선수들의 얘기는 다르다. 다시 말해 영웅 심리가 주타누가른의 판단력을 망쳐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은 “마지막 날 태국 골프팬들은 그를 마치 영웅처럼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주타누가른은 4000~5000여 명의 갤러리가 보는 가운데 멋지게 우승하고 싶은 욕망이 앞섰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소연은 “공의 라이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2온을 하기 위해 우드를 잡은 것은 최악의 패착이었다”고 했다. 최나연(26·SK텔레콤)도 “어느 선수나 2타 앞서는 상황이면 3온 2퍼트 전략이 기본 공식이다. 설령 3퍼트(보기)를 해도 우승인데 무모한 판단이었다”고 지적했다. 주타누가른은 당시 전문 캐디가 아닌 일회성 로컬 캐디를 고용해 최대 위기의 순간에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소녀 주타누가른은 아주 씩씩해 보인다. 그는 2일 현재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있는 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 초청선수로 출전해 선두권에 이름을 올리며 자신의 주가를 높였다. 그가 생각보다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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