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예술의전당 사장은 문화부 전관예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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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권이 우파에서 우파로 넘어감에 따라 문화 권력 교체도 별반 없을 줄 알았다. 복병이 생겼다. 서울 예술의전당(이하 예당) 사장 자리다. 모철민 사장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전격 발탁돼, 공석이 됐다.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 공연장 아닌가. 벌써 눈독 들이는 자가 여럿이다. 누가 임명되느냐에 따라 예술기관장 연쇄 이동도 점쳐지고 있다.

 단지 최고 공연장 대표라는 상징성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공교롭게도 최근 예당 사장이 잇따라 권력 핵심부로 가게 된 게 세간의 관심을 더욱 끌게 했다. 모 사장이 청와대로 갔다면, 이전 김장실 사장은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뱃지를 달았다. “어지간한 사람 할 엄두 내겠나. 예당 사장은 권력으로 가는 중간 교착지”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김장실·모철민 사장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었다. 차관 임기 얼추 채우고 그 다음 예당 사장으로 갈아탔다. 따지고 보면 둘만 그랬던 건 아니다. 예당이 올해로 출범 25년째를 맞았고, 13명의 사장이 거쳐갔는데, 그중 8명이 문화부 출신이다. 무려 60%가 넘는다. 25년간 공연계 인물이라곤, 피아니스트였던 김용배(2004∼07년) 씨가 유일했다. 이러니 문화부 내부에서 “차기 사장으로 곽영진 차관이나 조현재 기획조정실장이 가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전관예우가 법조계에만 있으랴. 문화부에서도 예당 사장 자리는 전관예우였다. 왜 이렇게 탐을 낼까. 폼 나기 때문이다. 같은 문화부 산하라도 문화재청장이나 국립중앙도서관장은 어딘가 골치 아파 보이지 않던가. 게다가 “전문성 떨어진다”고 욕 먹기 십상이다. 하지만 예당은 딱히 공연을 몰라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누가 공연을 공부하든가, 그냥 즐기지. 우아하게 관람하고, 연주자와 와인잔 기울이며 파티 열고, 예술 미학을 어느정도 주고받으면 될 뿐이다. 지금도 “대관 좀 해달라”고 머리 조아리는 아티스트가 부지기수다. 오죽했으면 전직 장관(유인촌)까지 예술의전당 이사장으로 왔겠는가.

 김장실·모철민 사장에게 과오가 있었다는 건 아니다. 무탈하게 잘 했다. 하지만 딱히 눈에 띠는 업적도 솔직히 없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태 공연과 담 쌓고 지낸 이들이 임기 2, 3년 안에 뭔가 엄청난 일을 해주길 기대하는 게 무리다. 이들 역시 어차피 지나가는 자리이지 않던가. 이런 풍토에서 런던 오페라 하우스와 워싱턴 케네디 센터를 흑자로 전환시킨, 마이클 카이저 같은 ‘예술행정의 달인’이 출현하길 바라는 건, 사치다.

 유진룡 전 차관이 문화부 장관 후보로 내정됐을 때, 그가 단지 신망이 두터워서만 문화부에서 그토록 환영했던 것은 아닐 게다. 문화부 관료 출신 첫 장관이라는, 문화부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다는 점에 더 감격해 했다. “국방·외교·경제처럼 이제야 문화도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며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문화부가 산하 기관장인 예당 사장 자리를 꽉 틀어쥔 채 끼리끼리 차지하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유진룡 장관 후보자의 선택이 궁금하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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