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가족 소풍은 자원봉사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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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기도 광주 한사랑마을을 찾은 이창준씨 가족이 뇌병변 장애를 가진 여섯 살 지형(가명)이와 공놀이를 하고 있다. 이씨네 가족은 2010년부터 매달 한두 번씩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왼쪽 둘째부터 부인 김경희씨·이씨·아들 인호·준호군. [강정현 기자]

일요일이었던 지난 17일 오전 7시쯤 기자가 서울 강서구 염창동 이창준(46)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이씨는 두 아들을 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휴일 아침인데도 집안이 부산합니다. 전업주부인 부인 김경희(43)씨는 부엌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과일을 깎아 도시락통에 담는 중입니다. 두 아들 중3 인호(16)와 중1 준호(14)는 졸린 눈을 비비며 양말을 신고 있네요. 하지만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오늘은 우리 가족 소풍날이에요. 다들 이날은 모든 스케줄을 비우죠.”

 아빠가 차에 짐을 실으며 웃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켜더니 경기도 광주 어딘가를 찍습니다. 집에서 67㎞ 거리. 차 안에선 먼저 인호의 고교 입학에 대한 얘기가 오갑니다. 그러고는 요즘 가족의 최고 관심사인 준호의 여자친구 얘기로 이어집니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2층짜리 빨간색 벽돌 건물 ‘한사랑마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에서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시설이지요. 만 5~34세 장애인 110여 명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씨가 말한 ‘가족 소풍’은 바로 이곳에서의 봉사활동이었네요.

 이씨네 가족은 2010년 6월부터 이곳에서 매달 한두 번씩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아이들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시작했다고 합니다. 가족은 남자 장애인 9명이 지내는 ‘바울방’을 맡고 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엄마·아빠는 바지부터 걷더니 장애인들을 한 명씩 욕실로 데려가 목욕시킵니다. 목욕이 끝난 뒤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르고 기저귀를 채우는 건 인호와 준호의 몫입니다. 김진수(36) 사회복지사는 “어린 아이들이 하기엔 힘들고 꺼릴 만한 일인데…”라며 기특해합니다. 방 청소도 10분 만에 쓱싹쓱싹, 한 숟가락씩 떠먹여야 하는 식사시간도 이젠 20분이면 충분합니다. 이날 가족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을 꼬박 이곳에 있었습니다.

 처음엔 아빠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던 아이들이 요즘엔 “형(장애인)들 보러 가자”며 먼저 보챈다네요. 이유가 뭘까요. 인호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뿌듯하다”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합니다. 인호는 학교 시험이 끝난 날 PC방에 놀러 가자는 친구들을 모아 봉사활동 갈 정도로 열성적입니다. 동생 준호는 “옛날엔 엄마·아빠와 얘기하는 게 귀찮아서 집에선 말도 잘 안 했는데 요즘은 안 그래요”라고 합니다. 봉사활동을 함께 하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들인지 새삼 느낀다네요.

 봉사활동 하느라 공부에 지장은 없냐고요? 인호는 올해 자율형사립고인 장훈고에 입학합니다. 내신 성적이 상위 50% 이상이어야 지원할 수 있는 곳이죠. 인호와 준호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수학 과외도 받고 영어학원도 다니긴 합니다. 평일에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주말에 하루 짬을 내는 것이죠.

 오히려 자원봉사는 두 아이에게 남들이 갖지 못한 꿈과 재능을 줬습니다. 인호는 유니세프에서 난민구호 활동을 하고 싶은 꿈을 갖게 됐습니다. 준호는 “한사랑마을에서처럼 학교에서도 친구들을 더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그 덕분인지 준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교회장을 했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애들이 사춘기라서 너무 힘들다고 해요. 반항하고 방에 들어가서 문 걸어 잠그고…. 그런데 우리 애들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봉사활동이 우리 아이들을 바꾼 거죠.”(엄마)

글=이한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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