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빚갚기 미루고 임금 올려 민심수습

중앙일보

입력

"정치인들의 부패와 선심성 정책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최대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 클라린의 국제부장 마르셀로 칸텔미는 23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슷한 시간 오랄도 브리토스 신임 노동장관은 "현재 2백페소(2백달러)인 한달 최저임금을 민간 근로자는 4백50페소로, 공무원은 5백50페소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임시내각은 선심성이라는 비판을 또 받더라도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흉흉해진 민심을 어루만지는 일이 먼저라고 판단한 듯 하다.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 대통령 자신도 국민들의 고통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호화 전용기와 관용차까지 팔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들의 월급을 3천페소로 제한했다.

칸텔미 국제부장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같은 조치는 불가피한 것으로 이해된다. 가장 큰 당면과제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서슴지 않고 빈부격차라고 말했다."3천5백만 인구 가운데 1천4백만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되고 그 중 3백만명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는 10년 전 27배에서 지금은 1백20배로 벌어졌다"며 정치권에 대한 빈민층의 분노와 불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제스처로 그칠지라도 새 내각은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임시내각은 일단 재정긴축 보다는 경제회생에 중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채무상환을 중단하고 그 돈으로 1백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사아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는 대외채무 상환을 가장 중시해 왔으나 앞으로는 기업과 국민들에게 진 빚을 먼저 갚겠다"고 말하고 있다.

칸텔미 부장은 "현재 정부는 빚 갚을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대로 긴축재정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의 반발만 샀을 뿐 실패로 결론났다"고 진단했다.

사아 대통령은 제3의 화폐(아르헨티노)발행계획도 밝혔다. 공무원 월급지급과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풀어야 하는데, 달러화와 1대1로 교환되는 페소화를 더 발행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페소화 평가절하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칸텔미 부장은 "평가절하는 시간문제"라고 말했다.정부가 공식환율을 계속 '1페소=1달러'로 묶어둔다 해도 은행에서 페소화를 달러로 바꿀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주정완 순회특파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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