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흑77~79, 순식간에 대세를 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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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본선 8강전)
○·이세돌 9단 ●·천야오예 9단

제7보(73~80)=우변 백○ 석 점을 내주고 선수를 잡은 이세돌 9단이 백△에 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등공신이 된 수인데요.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수에 해당합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려는 것입니다.

 사실 이 같은 한방(백△)을 자신있게 두드릴 수 있다면 보통 고수가 아닙니다. 73도 마찬가지인데요. 백이 만약 손 빼고 다른 데를 둔다면 흑2, 4로 즉각 미생마가 됩니다. 아직은 A가 있어서 잡힐 리 만무하지만 4를 선수로 당하고 집이 오그라드는 게 아픈 겁니다. 그런 수읽기와 아픔의 농도 등을 공유할 때 비로소 이런 수순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지요. 한데 바로 이 직후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삶이 급하다고 생각한 천야오예 9단이 77로 작은 곳을 밀고 들어간 것입니다. 천야오예는 한국 일류 기사들에게 70%라는 놀라운 승률을 보이고 있는 강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세돌의 마법에 겁먹은 걸까요. B로 받으면 C로 치겠다는 의도지만 이세돌이 받아줄 리 없지요. 대신 반상 최대의 78을 조용히 차지합니다.

 79는 내친 걸음이고 분노 섞인 한 수지만 역시 작았습니다. 바로 이 몇 합에서 흑은 순식간에 대세를 잃고 말았습니다.

 박영훈 9단의 연구에 따르면 79는 ‘참고도2’ 흑1로 들어가 응수를 물어야 했습니다. 백2로 차단한다면 3으로 싸웁니다. 백이 만약 물러선다면 흑은 굳이 79를 둘 이유가 없다는 거지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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