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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로지] 연기경력 벌써 15년 정태우

중앙일보

입력

아역배우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늘 걸어가는 길의 나무가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기쁨과 비슷하다.

'징그럽게' 연기 잘하고 게다가 15년 경력이라는 그를 만나기 전 약간은 애늙은이일 거라는 막연한(피곤한 ? )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제가 정태운데요"하며 일어나 꾸벅 인사하는 모습과 태도는 대학교정 어디서나 부딪칠 것 같은 영락없는 82년생이다.


그 연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물었다.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의 비율을 5대5로 답했다.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아이들은 밑줄 그으며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가 자신을 사랑하고 누가 자신을 이용하는지 안다.

사랑받고 있다는 자족감이 그의 연기력을 훌쩍 키웠으리라고 조심스럽게 예단해 본다. 해리 포터 역을 맡은 소년의 아버지는 그의 출연조건으로 거액의 돈보다는 제작진의 교육적 배려를 요구했다고 한다. 정태우가 잘 자란 건 현직 교사인 그의 부친 덕이 큰 것 같다.

정태우의 속내를 들여다보니 새삼 교육의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한국의 교육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기본이란 교육의 본뜻을 가감없이 실현하는 일이다. 집어넣는 게 아니라 끄집어내는 것이 교육이다.

주기율과 연보(年譜) 를 차에 기름 넣듯이 꾸역꾸역 집어넣을 게 아니라 아이가 가지고(숨기고) 있는 재능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그가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참교육이다.

주입식과 획일화는 교육의 적이며 창의성과 다양성이야말로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재료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아이의 재능을 발견, 발굴하기 어려울 땐 그가 어떤 것에 가장 큰 흥미를 보이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대화해야 한다.

정태우는 다섯살 때 동네에서 드라마를 촬영하는 걸 보고 자기도 연기하고 싶다고 일관되게 엄마를 졸랐다고 한다.

아역배우는 부모, 선생님,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 그리고 동료 연기자가 두루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 한다. 까졌다고 흉볼 게 아니라 그가 진정으로 알에서 깨도록 도와야 한다. 그는 두루두루 고마운 사람의 이름을 열거한다.

'왕과 비'에서 그가 단종 역을 할 때 (그가 연기한 세번의 단종 역 중 하나) 수양 역을 한 임동진씨는 연기지도뿐 아니라 인생지도까지 해준 분이다. 그의 주선으로 어린 정태우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의 청소년 홍보대사직도 맡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배우로 남겠다고 했다. 그 표정이 의연하다. 배우가 뭐 그리 좋은지 궁금했다. 역시 정답이 나왔다.

한가지도 제대로 해보기 어려운 게 사람의 일생인데 시간.공간을 관통하며 누군가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 본다는 게 재미있단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전 벌써 여러 번 죽어봤거든요."

지금 그는 청춘 시트콤에 출연중이다. 망가지는 게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아무리 망가져도 중심은 지키죠." 되짚어보니 그의 '어록' 중 인상적인 건 '주관'의 중요성이다. 그는 후배 아역 배우들에게 어떤 유혹이나 강압에서도 주관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15년 경력 연기자의 철학과 처신이 놀랍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chjoo@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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